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 박두 작 'wild and pure' Mixed Media 227.3x181.8cm 2021년

"도대체 이게 뭘까", "왜 이런 걸, 그것도 적지 않은 크기의 캔버스에 그렸을까". 왠지 화면의 낭비처럼 보인다. 여러 미술 영역 중 특히 추상회화를 볼 때마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애당초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처음부터 묘사되지 않은 구체적 대상을 놓고 그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한다는 건 괜한 시간낭비일 뿐, 추상회화를 감상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추상회화의 감상법은 바로 선과 점, 색채나 형태 등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만이다. 그것이 추상회화의 가장 큰 매력인데, 사람들은 그 '매력의 뒷면' 혹은 '숨은 그림 찾기' 식으로 자꾸 화면 속에서 어떤 걸 찾아내려고 한다.

오직 색과 형태만으로 된 추상회화일수록 오히려 '마음의 울림'은 더 크다고들 한다. 그 울림은 때로는 활화산처럼, 때로는 고요한 명상에 접어든 것처럼 말이다. 마치 지적인 게임을 하듯 앞으로 추상회화를 볼 기회가 있으면, 감상 후 꼭 자신의 감정의 실마리가 어떠했는지를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박두 작 'wild and pure'도 추상회화다. 제목 'wild and pure'는 '야생과 순수'라는 뜻으로 두 단어는 인공적으로 조작이 가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어찌 보면 '동의이음어'(同意異音語)다. 작가의 마음이 붓을 따라 움직였는지, 실제로 붓이 마음을 따라 움직였는지, 화면에는 자유로운 붓의 길이 색채를 타고 흐르고 있다.

여기에 각각의 색채마다 의미를 부여해본다. 검은색에 '수용', 파랑색에 '희망', 노란색에 '밝음', 녹색에 '청춘', 빨강색에 '정열'을 감정이입 해보자.

이제 박두의 작품은 처음보다 확실히 그림에 대한 이해도 넓혀졌을 뿐 아니라 화면 속으로의 진입장벽도 확 낮아졌다. 작가는 자유로운 감정의 물결에 휩싸여 다양한 추상명사적 의미를 지닌 색채를 하얀 캔버스 위에 거리낌없이 표현했던 것이라고 여기면 지나친 유추일까.

중국 화론에 '이형사신'(以形寫神)이란 말이 있다. '형태를 통해 정신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이형사신을 잘 표현하게 되면, 다른 말로 색채 배합이 잘 되면 보는 이의 시선을 끌고 생기마저 부여하는 것이 또한 그림일 수 있다.

"저는 기(氣)를 그릴 뿐,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아요. 늘 기교보다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작업합니다. 저의 삶은 완벽하지 않고 늘 미완성의 연속이며 부족하죠. 저의 그림도 미완성의 느낌, 서툴고 기교가 없는 느낌이 주는 거칠고 순수함이 저의 그림에 매력으로 표현되어가길 바랍니다."

거칠지만 속됨이 없고 순수하지만 화려함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작가의 그림 그리는 목적이다.

마음이 붓을 따라 움직여 상(像)을 취하는데 미혹됨이 없고, 대상을 숨기고 형태만을 드러내 속되지 않는다. 또 깎고 덜고 크게 요약해 생각을 응축해 마음 내키는 대로 함으로써 일정함이 없는 화면을 구축하고 있는 박두의 작품은 추상회화가 함축할 수 있는 텍스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