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듣기 싫어하는 남성들의 얘기로 꼽히는 것이 군대 경험담이다. 더 듣기 싫어한다는 것은 군대 축구 얘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휴가 나온 남자친구의 군대와 축구 얘기에 질려 고무신을 바꿔 신은 여자친구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는 더는 남성 전유물이 아니다. 미니 축구 격인 풋살이 활성화되면서 여성 축구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축구를 남자애들의 놀이로 여기는 학교 문화도 초등학교부터 바뀌고 있다.
여자축구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되고, 1991년부터 여자월드컵축구대회가 4년마다 열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축구 붐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여자축구는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최근 풋살을 중심으로 축구 하는 재미에 푹 빠진 여성들을 만나보면 열정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지난 13일 대구 북구 J풋살파크. 대형 건물의 옥상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대구시풋살연맹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여성 풋살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경기장 바로 앞의 옥상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파이팅을 다지는 선수들의 함성과 응원 목소리 등 경기장 분위기가 남자축구 이상으로 뜨거웠다.
축구선수들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허벅지와 종아리는 굵고 근육은 탄탄했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시합하는 동료를 응원하는 이들도 보였다. 격렬한 몸 다툼으로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단순히 여성들이 공놀이하는 수준이 아님을 반영한다. 소통하며 조직적인 플레이를 하는 등 축구 실력도 상당했다.
대회 참가 팀마다 지도자가 있는 등 짜임새가 있기에 풋살장에서 운영하는 클럽 소속으로 보였으나 회원 회비로 운영하는 순수한 여성 풋살 동호회였다. 이날 열린 대구시장배 대회에는 토스FS, 다옴FS, 푸파FS, 위 아 매드, 하이두FS, 매드FS 등 6개 팀에서 70여 명의 여성 풋살 동호인들이 참가했다. 대구에는 20, 30대 여성 중심으로 10여 개의 여성 풋살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 동호회에는 외국인들도 포함돼 다국적 팀이 여럿이다. 이번 대회 참가 선수들도 다수가 20대 여성들이었다.

이번 대회를 마련한 대구시와 대구시풋살연맹 관계자들은 젊은 여성들의 풋살 열기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여성 축구라고 하면 실업이나 학교 등 엘리트 팀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주부 팀 정도로 여겼는데, 혈기 넘치는 20대 남성의 모습을 그대로 보였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대구시풋살연맹은 여성 풋살 동호인들의 호응도가 높은 만큼 내년에는 전국 대회로 격을 높일 계획이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축구 붐이 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풋살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중학교 체육 교사 방우리(대구 고산중) 씨는 요즘 축구는 여자들의 대화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여성 풋살 동호회 활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남자 선생님이라면 요즘은 여자 선생님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대화에 참여한다고 했다.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미디어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크게 높아졌다. 박세리가 나오는 '노는 언니들'을 시작으로 2020 도쿄 올림픽 여자배구의 김연경, 양궁의 안산 등 여자 스포츠 스타들이 미디어를 통해 퍼포먼스를 과시하면서 스포츠 활동을 끌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너지 효과 속에 '골때리는 그녀들'이란 프로그램은 여성 축구에 불을 지폈다. 방 교사는 TV에서 이 프로그램이 나온 뒤부터 "선생님, 골때리는 그녀들 보셨어요, 축구 어떻게 하는 건가요, 정말 재밌어 보이는데 저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SNS도 여성들의 스포츠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예전에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여성들은 어디서 하는지, 어떤 동호회가 있는지 막막했는데 이제 SNS를 통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몇 가지 키워드 검색으로 집이나 직장 가까운 곳의 팀을 찾을 수 있다. 동호회는 훈련 모습이나 경기 영상 등을 담은 홍보물을 SNS에 적극적으로 올리고 있다.
방 교사는 여성 축구 붐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축구가 지닌 재미'라고 강조한다. 그는 동호회에는 전문 선수를 했거나 체육 교사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수가 일반 직장인이라고 했다. 체육 관련 직업을 구하거나 다이어트 등 건강 관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공을 차보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에 축구에 입문한다는 것이다. 초기 입문자들이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서 동호회는 자연스럽게 활성화되고 있다.
스포츠에서 종목별 성 평등은 거의 이뤄진 상태다. 피를 흘리는 격투기 종목에서도 여성들의 경기 장면을 볼 수 있다. 남성의 체력적인 우월성에 기반한 종목들도 여성 참가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스포츠는 앞으로 혼성 종목의 확대로 성 구분이 없어질 전망이다. 양궁과 탁구 등 일부 종목에서는 이미 남녀가 한 팀이 돼 실력을 겨루는 혼성 종목을 출범시켜 인기를 끌고 있다. 올림픽뿐만 아니라 프로야구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남녀가 함께 뛰는 장면을 볼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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