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매번 다른 주제로 그림책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번 달에는 시 그림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명확하게 장르가 시 그림책이라고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한 편의 시를 그림과 함께 한 권 분량으로 담아내면 '시 그림책'이라고 불렀다.
여러 시 그림책들이 있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와 이성표 그림 작가의 그림이 합을 이룬 '소년'이라는 시 그림책을 좋아한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우리나라 문학의 상징으로, 그는 이름도, 언어도,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빛과 같은 시를 지었다. '소년'은 끝내 그의 유작이 되었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時'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많은 출판사에서 복간하였는데, '소년'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담아내니 느낌이 새로웠다. 한 행 한 행 여백이 만들어 준 간극은 진한 향기처럼 여운을 남겼다.
까까머리를 한 소년이 책 표지에 그려져 있다. 표지 그림 속의 소년은 윤동주일 테다. 그의 슬픈 눈이 겹쳐져 있다. 파란 물감으로 그려진 소년의 머리 위로 붉은 낙엽이 내려앉아 있다. 금세 바스러질 낙엽이지만, 그 붉은 기운이 그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강물 같은 그림은 흐르고 흘러 슬픈 얼굴 하나를 그려놓고 간다. 아마도 그가 사랑하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존엄에 대한 자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지은 시를 두고 '시'라는 한 글자를 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그리움들을 끌어다 놓았을까. 그리움 위에 숱한 시간을 더해 시 한 편을 완성했을 그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중략)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윤동주 '소년')
그날 진행자가 '소년'을 낭독했다. 나도 진행자도 금세 눈물이 모였다. 만약 방송이 아니었다면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 거다. 아마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가 발화되는 순간 자주 눈물을 떨구는 사람들이겠다 싶었다.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시인 윤동주가 내내 떠올랐다. 언젠가 그의 지기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몇 수의 시를 남기러 세상에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픈 시절을 견디다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아 위로와 위안을 건넬 것이다.
오늘 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더 없이 맑고 깨끗하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경선 일정 완주한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가 지도자급' 존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