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아름다움의 힘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지난 주말 경주 남산을 다녀왔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가까운 산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강박증이 있었나보다. 남산은 경산에서 가깝고, 그리 높지 않은 곳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주변 산세가 빼어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는 삼릉 솔숲의 아름드리 도래솔의 군무를 뒤로 하고, 상선암을 거쳐 금오봉에 올랐다. 상선암 근처 산비탈은 아침 햇살을 머금은 단풍이 남산의 아름다움을 웅변하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 삼불사를 지척에 두고 우리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을 단풍이 작은 산사를 품었고, 그 모습은 경이 그 자체였다. 이렇게라도 가을이 마음에 내려앉으니 이제 마음 편히 가을을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찬탄과 경이가 흘러나온다. 구약성경의 많은 시편이 자연을 찬양하거나 그 놀라움을 노래한다. 그 많은 시편 가운데 가을의 시, 가을의 노래라 부를만한 것도 있다. 특히 시편 8편은 가을이 아니고서는 그런 노래가 나올 수 없는 시이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듣노라면 저절로 자연에 대한 경이를 경험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을 어떻게 자연을 노래하고, 가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라고 할까. 이 시의 첫 행에 답이 있다. "주의 이름이 온 땅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역설적이지 않는가.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연 그 자체에 귀속시킬 수 없는 어떤 위대한 힘을 느끼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자연 그 너머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시선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했지만, 이내 그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경이와 아름다움은 자연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시편 19편도 그렇게 노래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을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까지 이르도다." 인간이 경험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는 자연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이상을 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편 기자는 '아름다움'과 '경이'는 단지 미적 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름답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앗디르'(אַדִּיר)이다. 앗디르는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힘'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아름다움은 힘이다. 그 힘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다른 곳을 이끄는 힘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자기를 압도했다고 하고,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아름다움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을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대상, 인간 지혜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지금은 인간이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지, 자연이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 더 이상 아니다. 그러나 자연에 나가보라. 만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 단풍,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라.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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