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우리 집으로 건너온 장미꽃처럼(시가 이렇게 왔습니다)

이기철 지음/ 문학사상 펴냄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가을 끝자락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가을 끝자락을 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청명한 날씨를 뒤로 하고 색색들이 꽃들로 가득한 '비날하우스'를 걷는 듯 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세상 근심을 잊고 색깔과 향기에 마음을 맡겼다. 서정성과 감성이 눈과 코 끝을 자극한다.

이 책은 꽃내음과 풀내음 가득한 정원과 숲속을 산책하듯 해준다. 온갖 아기자기한 수식어와 표현으로 가득한 시들 덕분이다.

노란 양산을 펴 들고 있는 저 은행나무에게도/ 푸름은 연애였을 것이다/ 초록으로 다 말 못 한 사연/ 마침내 붉게 붉게 태우고 싶었을 것이다/ (48쪽 '사랑하는 사람은 시월에 죽는다' 중)

그립다는 건 많이 만진다는 것/ 만져서 손때를 묻힌다는 것/ 이파리 나비 소낙비 뭉게구름 같이/ 부르면 마음이 물든다는 것/ (84쪽 '그립다는 말' 중)

아침보다 더 겸허해지려고 낯을 씻는 풀잎/ 순결에는 아직도 눈물의 체온이 배어 있다/ 배춧값이 폭등해도 풀들은/ 제 키를 낮추지 않는다/ (191쪽 '풀잎' 중)

이 책은 지은이 이기철 시인의 '고백'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는 들어가는 말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써온 1천여 편의 시 가운데 54편을 골라 펴냈다고 밝혔다. "고백록이라 해도 좋고 시작 배경이라 해도 좋고 자직시 해설이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책의 글들이 행여 시를 쓰는 분들을 위한 조언이 되고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큰 행운으로 삼겠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이 책은 다른 시집과는 달리 자신의 시와 함께 직접 시에 대한 충분한 배경과 해설을 함께 실은 것이 눈길을 끈다. 그렇기에 누구나 쉽게 시의 속뜻을 깊이 음미할 수 있어 좋다. 현실에 지친 어른들을 위해,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시'처럼 포근한 위로의 말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시인 이기철은 1943년 경남 거창 출생으로, 1972년 현대문학 '오월에 들른 고향'으로 등단했다. 대구시인협회 회장, 한국어문학회 회장, 대구예술가곡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지은이는 평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누구보다 부드라운 언어로 표현해내는 서정시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를 위한 동시로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는 그의 시선은 맑은 서정과 함께 삶과 현실을 따뜻한 눈으로 위로하고 감싸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285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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