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분홍(小粉紅)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2010년 10월 16일 중국 쓰촨성 청두시. 반일 시위를 하던 한 무리 청년들이 길 가는 소녀의 옷을 찢어 불태웠다. 소녀가 기모노를 입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황당한 것은 소녀의 옷이 중국 전통의상 한푸(漢服)라는 점이었다. 중국의 명절(중양절)을 맞아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중화 애국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자기 나라 전통의상을 찢고 불태웠으니 이런 해프닝도 없다.

이날 사건은 스스로를 '분노청년'(憤怒靑年·분청)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진 흑역사다. 분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한 중국 친정부 성향 청년 집단을 말한다. 분청은 톈안먼 사건(1989년)이 사상 교육 실패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 중국공산당의 애국주의 교육 영향으로 생겨났다. 외국에 대한 배타심과 중화주의, 중국공산당 열성 지지 등을 특징으로 한다.

2010년대 들어 분청은 쇠락했지만 '소분홍'(小粉紅·샤오펀훙)이 그 바통을 물려받았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인 소분홍은 대만·홍콩·티베트 독립 지지 세력과 중국을 욕 보이는 자를 적대자로 간주하고 온라인 공격 등을 벌인다. 방화벽을 뚫고 홈페이지를 도배하는 등 디지털에도 능하다.

소분홍의 상징색인 분홍에는 '당과 국가, 지도자를 사랑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소분홍은 자신들의 조국을 의인화해 '아중가'(阿中哥)라고 부른다. '중국 형님' '중국 오빠'라는 뜻이다. 소분홍은 시진핑 시대 중국공산당 및 정부 주도로 육성됐다. "애국을 머릿속으로만 담아두지 말고 실천하라"가 이들의 행동 지침이다. 중국과 패권 갈등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중화주의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강한 공격성을 드러낸다.

한국도 소분홍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들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자 중국의 문화적 세례를 받아놓고 이제 와서 중국 문화를 훔쳐가는 나라'다. 이들에게 한복과 김치도 중국 것이다. 이효리와 BTS가 소분홍으로부터 온라인 공격을 받았다. 이달 11일 열린 중국 6중전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종신 집권의 길을 다졌다. 소분홍은 시진핑 시대의 사상적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마오쩌둥 시대 홍위병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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