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고전희곡들이 현재의 무대에 되살아나는 것을 보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고전희곡을 무대화한 연극에서, 가끔은 작업자의 의지가 관객과의 소통보다는 원전에의 충실에 큰 비중으로 치우친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관객은 '내가 드디어 그 유명한 작품을 봤어!'라는 만족감 외에 어떤 감동이나 깨달음도 얻지 못한 채 극장문을 나설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고전의 원작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새롭게 해석하고 변형하여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연극은 '지금을 살고 있는' 관객들과 나 자신에게 유효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고전을 바탕으로 변형, 재창조한 공연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만약 관객이 원작을 모를 경우, 그것의 변형인 새로운 공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공연은 관객이 원작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이해하거나 즐길 수 있도록, 그 자체로서 완결성을 띄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원작을 알고 있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관람의 즐거움이 줄어들 수밖에 없음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원작 희곡의 내용뿐 아니라 공연에 사용되는 어휘, 다양한 문화적 상징 등을 관객이 알고 있느냐의 여부는 공연 감상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의 준비 과정에서는 관객 일반의 배경지식 정도를 예측하여 다양한 요소들을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어려운 지점이 '관객 일반이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라고 예측하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더 많이 알고 누구는 더 적게 아는 '우열의 편차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요즘은 경험과 지식이, 지극히 개인화 및 다변화되고 있다. 나의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적으로 노출되는 정보 속에 살아가는 시대, 잡학 박사는 줄어들고 세부 분야에 대한 준전문가들이 늘어나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로 인해 시대가 함께 공유하는 기억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혹은 추억이 적어진다는 것을 좋다 나쁘다로 당장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여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에 대해 나 또한 한동안 고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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