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전부터 책 읽어주는 앱이나 유튜브 채널이 인기다. 문학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것에서부터 어려운 철학서의 요약정리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다양성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책 읽기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은 익히 잘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직접 눈으로 책을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문맹의 독자들을 위해 혹은 단순 감상용으로 녹음된 음반이나 카세트테이프가 제법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보조도구도 불특정 다수를 위해 녹음된 탓에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뿐, 쌍방향 교감의 기회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바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 정서적 교감과 친밀성까지 제공하며 독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가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와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다.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콩스탕스'는 보수를 받고 방문하여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가정방문 독서라는 책 읽기 직업 전선에 들어선 그녀는, 다양한 연령대와 여러 직업의 사람들과 만나 그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로 책 읽기를 선사한다.
신체장애를 가진 사춘기 소년에서부터 헝가리 출신의 공산주의자 백작부인, 사교를 위해 교양이 필요한 기업 대표, 같이 놀아 줄 보모가 필요한 꼬마 아이, 은퇴한 법원장 등이 그녀의 고객이다. 그들을 만나 책 읽기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좌충우돌 갖가지 상황에 봉착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의 양태를 발견한다. 때로는 그녀가 책 목록을 선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원하는 책을 낭독하기도 한다. 모파상, 에밀 졸라, 보들레르, 마르크스, 루이스 캐럴, 사드 등 독서 목록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다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책 읽기를 진행한다. 사춘기 소년 '미하엘'은 우연히 만나게 된 30대 여성 '한나'와 관계를 맺으며 성에 눈을 뜨고 사랑을 알아간다. 책 읽기와 샤워, 사랑 행위 등으로 진행되는 그들의 만남에서 책 읽기는 하나의 의식이 된다. 글을 못 읽는 한나가 미하엘의 목소리를 통해 몰랐던 세상을 경험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딧세이아', '에밀리아 갈로티', '전쟁과 평화' 등을 낭독하는 미하엘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세상을 읽고 배우는 학교가 된다. 어느 날 한나가 사라진 후 책 읽기는 자연스레 중단된다. 법과 대학생이 된 미하엘이 법정 견학을 갔다가 나치를 위해 복무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한 혐의로 피고석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문맹 때문에 그녀가 억울하게 유죄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면서 책 읽기는 다시 시작된다.
단 이번에는 상대를 앞에 둔 책 읽기가 아니라 정성스레 책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통해서다. 미하엘은 한나에게 면회를 가는 대신 녹음한 테이프를 정기적으로 보낸다. 책 읽기 이외에는 일절 다른 내용이 없는 지극히 건조하면서도 사적인 그들만의 대화는 그녀가 지난한 감옥생활을 견디고 문맹에서 벗어나는 힘이 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이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길잡이하는 책이 있다. 좋은 책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후속 독서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목록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주는 책들이다. 깊어가는 가을 이 두 편의 소설에서 출발해 독서 편력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선화 교수(유럽언어문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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