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여기에 이른 것은 물론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도의를 잃은 것도 (패전의) 한 원인이다. 이제 나는 군·관·민, 국민 전체가 철저하게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 국민 총참회가 우리나라 재건의 첫걸음이자 국내 단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지 3일 뒤인 1945년 8월 28일 일본 총리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가 항복 후 일본 언론과의 첫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른바 '1억 총참회론'이다. 전쟁 책임은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것으로, 히로히토(裕仁) 천황의 전쟁 책임을 희석하는 '말장난'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치학계의 거목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1956년에 발표한 '전쟁책임론의 맹점'에서 이렇게 비판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지배층이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임시방편…마치 오징어가 도망가기 위해 먹물을 내뿜는 것과도 같았다"라고 비판했다.
본질을 흐리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말장난을 '오징어 먹물 내뿜기'에 비유한 것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도 마찬가지였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大敵)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관용구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이."
'대장동 특검'에 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말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후보는 '특검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미진하면 하자'고 말을 바꿨다. 이 후보가 대장동 특혜와 무관하다면 이런 이유나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다. 특히 검찰 수사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더 지켜볼 것도 없다.
그랬던 이 후보가 18일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크게 밀리는 지지율 만회를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특검 수사 대상을 대장동 의혹에 한정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이 후보 측이 주장하는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대출 비리 수사 무마 의혹,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공공개발 포기 압박 의혹 등도 특검을 하자고 우기면 '특검 수용 의사' 역시 '오징어 먹물 내뿜기'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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