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미순(극단 소리 대표) 씨 부친 故 김황중 씨

자식이 8명이나 되는데 아무도 마지막 가시는 길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의 극단 입단에 반대했지만 공연할 때 객석 맨 앞자리에서 보셨지요

2005년 10월 16일 아버지 김황중 씨 부부의 생일 기념사진. 가족제공.
2005년 10월 16일 아버지 김황중 씨 부부의 생일 기념사진. 가족제공.

아버지! 깊은 밤입니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떠올리며 지난 추억을 곱씹어 봅니다. 멀고도 가까이 계신 아버지 그곳에서 편안하신지요? 벌써 아버지가 이승의 다리를 건너 저승으로 가신지도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자식이 여덟이나 되는데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저희 곁을 떠나시는 바람에 아무도 마지막 가시는 길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이 늘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태양이 지고, 별이 되신 우리 아버지. 그곳에서는 자식을 위한 희생도 고생도 없이 편안한 날들을 보내셔야 할 텐데, 어쩌면 여덟 자식과 엄마를 보살피시느라 그곳에서도 신경 쓸 일이 많아 몸과 마음이 힘드시진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제가 최근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후배에게서 전화가 와서 신호대기 중에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급정거하며 후미를 박는 사고가 나서 입원해 있다고 하자 대뜸 그러더라고요. '큰일 날 뻔했네. 언니 아버지가 언니 지켜줬네'라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는 항상 저와 가족들에게 따뜻하게 빛나는 태양 같은 존재였습니다. 엄하시고 무뚝뚝하셔 표현엔 조금 서투셨지만 얼마나 깊은 마음과 정성으로 가족들을 돌보셨는지 압니다. 사춘기 시절 가장 존경하는 사람란에 '아버지'라고 적어내곤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극단에 들어가 공연을 한다고 하자 반대를 하셨습니다. 막내딸 뭐하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하셨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해서 평범하게 잘 살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향 서산문화회관에서 어린이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공연을 보러오셨습니다. 기획하던 선배가 따님 예쁘게 나오는데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보시라며 객석 중앙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버지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서 공연한다는 생각과 반대하시던 아버지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무대에서 객석을 살펴봤지만, 아버지가 계실 자리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고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셨다고 생각하며 전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계속 공연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보고 계셨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그 많은 관객의 호응보다도 딸을 가까이 보시려 맨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공연을 보시던 아버지 모습.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2012년 천리포해수욕장 수목원에서 찍은 김황중(가운데줄 왼쪽 다섯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2012년 천리포해수욕장 수목원에서 찍은 김황중(가운데줄 왼쪽 다섯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아동극 배우로 시작한 저는 작품을 제작하고 연출하는 극단 대표로 성장했습니다. 사실 극단을 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열정은 넘치던 30대 때는 극단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친척, 가족들은 시집 안 가냐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할 때, 추석에 아침상을 물리고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습니다.

평소 믹스커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커피 한잔 다오'라며 상머리에 앉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커피를 한 모금 드시더니 뒤통수에 대고 '요즘 성공하는 여자들은 늦게까지 자기 일을 하다가 결혼하거나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더라' 하시는데 그 말이 너무 큰 응원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반대하신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잘하라고, 잘하고 있다고 툭 던지듯이 하신 말씀이 내내 가슴에 남아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힘으로 30년째 공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밝은 세상은 더 따뜻하게 태양으로, 어두운 마음엔 밝은 한 줄기 빛으로 모아 별이 되어 우리 가족을 지켜주시는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자식들 인생길을 가며 조금씩은 잘못된 판단으로 샛길로 빠질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눈물 흘릴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오신 길을 알고, 그 인생을 알기에 곧바로 바른길로 돌아오고, 넘어져도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도 툭 툭 털어버리고 열심히 인생이란 길, 산책하듯 즐기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엄마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그곳에서는 몸도 마음도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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