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대구의 ‘히젠도’ 환수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옛 일본 왕비를 한국인이 칼로 베고 불에 태우고 그 칼을 한국 사당에 걸어두면 일본인은 어떨까요?"

지난 16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 외교관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다음 날(10월 9일)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에서 "우리가 왕비를 죽였다"고 고백한 내용을 담은 사실을 보도했다. 당시 조선에 머물던 일본 영사관의 호리구치 구마이치 영사관보(補)의 친필로 평가된 편지에서 그는 "생각보다 간단해 오히려 매우 놀랐다"는 소감도 적었다.

이런 외신 보도에 대구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인 최봉태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장은 성명서를 내고 "명성황후 시해 사죄와 함께 관련된 자료의 공개,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인 히젠도(肥前刀)를 압수해 한국에 인도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번 보도에 최 회장이 히젠도 압수와 인도를 외친 까닭은 그럴 만했다.

사연은 2010년 3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인 이날, 해외 한국문화재 찾는 일을 하던 혜문 스님(위원장)과 이용수 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기자회견을 갖고 '히젠도 환수위원회' 출범식에 참여했다. 왜 '히젠도'인가. 이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면서 제시한 이토 사살 15가지 이유의 하나인 '남의 나라 황후를 살해한 죄'와 관련 있다.

히젠도는 명성황후 시해에 쓰인 칼로, 황후 침전 난입 3명의 일본인 가운데 한 명(토오 가쓰아키)의 것인데 시해 작전명 '여우사냥'을 빗대 칼집에 '늙은 여우를 단칼에 베었다'라는 뜻의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이런 히젠도가 일본 후쿠오카의 쿠시다 신사에 걸렸으니 일본에서 일제강점기 관련 공부를 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를 했던 그의 환수위원회 참여는 알 만하다.

그러나 환수 촉구 이후 국회에서 3차례 김민기 국회의원에 의해 제출된 '히젠도 처분 결의안'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등 세월만 흘렀으니 최 회장의 이번 성명서는 더욱 이해할 만하다. 특히 대구에서 독립운동 관련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 회장은 히젠도 환수 성과를 위해 대구 시민과 대구시의회 응원을 바라고 있다. 한국 국회도 침묵하는 히젠도 환수에 대구 사람은 과연 어떻게 화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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