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한창이던 1955년 9월 10일.
임병직 UN대사가 대구를 '행차'하던 그날
동촌비행장에서 시내까지 환영행사에
당국은 또 중·고생들을 거리로 불러냈습니다.
비행기는 연착하고 땡볕에 속속 쓰러졌습니다.
"10환씩 돈을 내어 깃발을 사 손에 들고
길바닥에 늘어서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제하 사설이
13일자 대구매일신문(현 매일신문)에 실렸습니다.
'부당한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후 중립국감시단에 포함된
공산국가(체코·폴란드)를 반대하는 관제 대모에
전국에서 학생들을 연일 강제 동원하던 터라,
학도를 정치 도구화 한 이승만 정권에
학부모를 대신해 직필로 저항한 사설이었습니다.
이튿날 국민회 경북도본부 김민 총무부차장,
자유당 경북도당부 홍영섭 감찰부장 등 20여 명이
대낮에 곤봉과 해머로 신문사를 습격했습니다.
'어디라고 감히 자유당 정권에 대들어?'
1층 인쇄시설, 2층 편집국을 모조리 절단 냈습니다.
"백주 대낮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
당시 경찰간부는 국회 진상조사단에 이렇게 내뱉곤
사설을 쓴 최석채 주필을 끝내 구속시켰습니다.
죄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평양방송에 인용된 사설이
빨갱이 사기를 높여 적을 이롭게 했답니다.
최 주필도, 신문사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설이 왜 이적행위인가 계속 되물었습니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마침내 무죄를 받은 이 사건은
5년 뒤 2·28, 4·19 민주화운동의 전사(前史)로
지금껏 한국 언론사에 빛나는 이정표가 됐습니다.
대쪽같은 언론 족적으로 최석채 선생은
2000년'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에 올랐습니다.
영국 더 타임스 해럴드 에반스 전 편집인,
독일 루돌프 아우그쉬타인 슈피겔 발행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유일한 한국 언론인이 됐습니다.
대구 중구 태평로 178. 바로 그 역사의 현장입니다.
66년 세월에도 근대풍으로, 그때 그자리 그대롭니다.
말길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던 이 건물은 그후
의술로 아픈 사람을 돌보는 병원으로 사용되다
이제 곧 영원히 사라질 운명을 맞았습니다.
9월 기준, 대구엔 집을 짓는 공사장만 184곳.
내년 봄이면 이곳도 헐어 아파트를 짓는답니다.
보존하고 재현하면 훌륭한 언론 역사관이 될텐데….
문화재도 못되고 중요 근대건축물도 아니어서
또 하나 스러질 근대유산이 안타까울뿐입니다.
가짜뉴스, 낚시기사, 받아쓰기 언론, 기레기….
이 건물을 지날 때면 그날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재미도 없게 됐습니다.
권력이 해머로 말문을 틀어막은 '백주의 테러' 현장.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셔터를 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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