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시끌벅적 교내의 소음도 조금씩 잦아든다. 아이들은 반을 찾아 일사불란 움직이고, 기다란 복도는 어느새 텅 비었다. "멍멍" 그때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교탁 옆으로 갈색 생명체가 빼꼼 머리를 내민다. 2살 갈색 푸들 '푸딩이'는 일주일에 두 번 중학교 수업을 나간다. 푸딩이는 동물매개놀이 도우미견으로 활동 중이다.
◆동물매개놀이 도우미견 되는 과정
푸딩이 견주 변혜진 씨는 지난 4월 달서구에서 주최하는 '반려동물산업 특화 전문인력 양성사업과정'에 지원했다. 해당 사업은 반려동물 매개 심리상담인력을 배출하는 과정으로, 보호자는 상담사로 반려견은 도우미견으로 함께 교육 받는다. 이 훈련을 통해 반려동물은 대상자와 유대감을 형성. 육체적,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는 일을 담당한다. 대상자는 노인, 초·중학교 학생, 더 나아가 자폐증이나 마음의 병을 앓고있는 이들로 구성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데 동물들은 때때로 큰 힘이 된다. 실제 세계 각국에서는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동물이 사람에게 미치는 여러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반려동물은 언어 능력 개선, 책임감과 자부심 형성, 신체 능력 향상, 긴장 완화와 마음의 안정 유도에 효과적이다. 특히 아이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자라면 언어 능력이나 정서적인 면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다.
교육 과정은 이론수업과 실습으로 이뤄졌다. 한국애견협회 소속 교수 2명의 지도 아래 '보호자에게서 멀어져도 기다리기',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가기', '큰소리에 반응하지 않기' '기본적인 개인기 연습' 등의 수업이 진행됐다. 도우미견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배변교육과 접종, 중성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이나 다른 개에 대한 경계심이 적고 사람과 교감이 잘 되는 친구면 좋다. 이 외에는 크게 요구하는 사항은 없다. 견종이나 크기도 상관 없고 나쁜 습관이나 행동은 실습 과정을 통해 교정하면 된다.

"사람에게 천직이 있다잖아요. 푸딩이에게 천직은 도우미견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데에다 눈치도 빨라 감정도 잘 읽는다. 혜진 씨의 기쁨과 슬픔을 늘 공유해왔던 푸딩이에게서 동물매개놀이 도우미견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했다고. 사회성도 좋아서 다른 개가 다가오면 자기 냄새를 맡으라고 뒷다리를 들어준다. 심지어 자신을 보고 짖는 개에게까지 다가가 배를 보여준단다. 여러 강아지들이 함께 활동하는 도우미견에게 사회성은 또 하나의 덕목이다. 다만 계단 오르기나 원 통과하기 같은 어질리티를 무서워 했다. 다행히도 이는 긍정 강화 훈련으로 교정됐다. 물론 보호자도 교육을 받는다. 보호자는 대상자와 매개견이 친해질수 있도록 도와주고, 대상자에게 매개견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을 맡는다. 도우미견과 대상자가 친해질 수 있도록 보호자는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하고 도우미견에게 생길 수있는 변수도 제어해야 한다.
◆학교·노인복지관서 본격적 활동 시작
푸딩이와 혜진 씨는 대구지역사회복지문화교육진흥협회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요즘에는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에는 달서구에 위치한 중학교, 그리고 수요일 오후에는 노인 복지관. 토요일은 놀이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오늘 1교시는 카드놀이 시간이다. 기쁨, 슬픔, 분노, 사랑 등의 감정표시가 그려진 카드로 진행되는 놀이다. 아이들이 카드를 꺼내면 그 감정을 푸딩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매칭시킨다.
"푸딩이 기분을 말해줬으니, 이제 여러분들 차례에요" 푸딩이를 선두로 아이들도 제각기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쁜 감정이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도 자연스레 배워나간다. 2교시가 시작되니 아이들이 우르르 야외로 나간다. 1교시에 쏟아냈던 감정들을 볼링핀에 쓴 뒤 볼링공으로 날려버리는 게임이다. 푸딩이가 먼저 뛰어가 볼링핀을 쓰러뜨린다. 그러자 아이들도 '분노' '슬픔' 이 써진 볼링핀을 시원하게 쓰러뜨린다.
"토요일에 나가는 놀이학교는 장애아동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에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사람하고는 교감이 힘든 아이들이다보니 푸딩이와는 교감이 일반 아이들보다 더 잘되더라고요. 푸딩이도 토요일을 특히나 더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푸딩이에게는 그 흔한 월요병도 없다. 직장인이라면 겪는 그 고질병 말이다. 수업가자는 말은 기가막히게 알아 듣고는 신나서 빙글빙글 돌고 꼬리를 마구 흔든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예쁨 받는 걸 좋아하다보니 수업 나가는 게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다. "수업을 가면 간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비밀은 기자님과 저만 알기로 해요" 혜진 씨와의 약속을 독자 분들도 지켜 주시길.

◆동물로 인해 변화하는 대상자 보며 뿌듯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의 모습을 뽐내는 푸딩이에게도 나름의 흑역사가 있다. 복지관에서 실습을 완료한 후 처음 수업 나간 곳에서 울음이 터져버린 것. 친구들이 푸딩이에게 너무 잘해주었는지, 수업 종료 알람이 울리고 친구들이 교실에서 떠나자마자 푸딩이가 "잉~잉~" 울기 시작했다고. 또 한번은 수업시간에 푸딩이에게 '짖어' 라는 개인기를 시켰는데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뻥긋 거리면서 뒷발차기를 해서 친구들이 빵 터진적도 있다. "그래도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견(?)인데.. 위엄이 떨어지는 행동을 종종 할 때가 있답니다(웃음)"

게다가 푸딩이에게는 매개견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동물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 같이 매개활동을 하는 깜지라는 수컷 닥스훈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만 보면 좋아서 장난을 종일 친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제재를 하거나 미리 그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좀 풀어줘야만 수업 진행이 원활해진다고.
동물 매개 수업은 대상자가 적은 경우나 특별히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한 마리를 기준으로 나가고 대상자가 많은 경우에는 최대한 많이 수업에 나간다. 여러 견종의 특성도 이해하기 좋고 또 대상자마다 좋아하는 견종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관은 특히 좀 큰 견종을 좋아하는 편이고 어린이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작은 견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한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푸딩이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유난히 어둡고 말수가 적던 아이는 푸딩이와의 수업을 통해 몰라보게 밝아졌다. 노령견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펫로스증후군을 겪던 한 노인은 소원으로 '푸딩이와 소풍가기'를 손꼽았다. 푸딩이의 넘치는 재주와 애교 넘치는 모습에 삶의 활력를 찾았단다.
통 자신의 속마음을 내놓지 않던 사춘기 소녀는 푸딩이를 통해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푸딩이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모두에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매개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치유받았으면 좋겠어요. 동물들은 정말 사람에게 주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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