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 신은정 작 'ALLEGORY' 60x200cm, mixed-media, 2020년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란 의미를 지닌 '알레고리'(Allegory)는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표면적) 의미와 이차적(이면적) 의미를 모두 갖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가령 이솝우화가 동물 세계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면엔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와 교훈을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알레고리는 이미지와 실체를 결합해 어떤 초월성이나 진리를 구체화하고자 하는 '상징성'과는 다르다. 다만 알레고리는 사물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그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를테면 '영원성'과 '구원', '귀의'같은 인간의 집단적 의식 현상이나 고차원적 욕망의 표출일 뿐이다.

이러한 알레고리의 의미를 적용해보면 사물은 제각기 드러난 면과 감춰진 면이 있기 마련이며, 하나의 존재 안에 이 두 가지 모순적 속성들은 늘 갈등과 충돌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형상을 만들어낸다.

신은정 작 'ALLEGORY'도 회화라는 기법을 통해 사물 속에 숨겨진 의미를 복원해보려는 노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판넬 위에 물감을 여러 번 칠하고 종이를 붙인 뒤, 연필로 작은 선을 드로잉하고 종이의 일부분을 잘라내 사포질로 마무리했다. 작품을 눈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동일한 모양으로 촘촘하게 붙은 종이 조각과 잘려나간 종이 틈으로 판넬의 표면이 드러나 있다.

사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의 프레임(주관성)을 갖고 세상을 해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은정은 반복된 작업의 노동과 우연 및 필연의 조합으로 세상의 '알레고리'를 추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을 드로잉하고 커팅 후 일부분을 떼어내고 사포질을 반복하는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회화적인 행위가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시된 신은정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까.

언뜻 보면 같은 모양의 무한반복 같고, 또 어찌보면 볼록볼록한 엠보싱의 표면을 확대한 것 같다. 또 좀 더 오래 들여다보면 원시생물들의 군집 같기도 하다. 아마 신은정의 이 작품이 주는 최상의 장점이라면 보는 사람, 보는 각도, 보는 때, 보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보일 수 있는 마술적인 환상을 부린다는 점이다.

잘 묘사된 구상회화처럼 구체적인 오브제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 욕망의 강 저류에 흐르는 근원적인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 혹은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끝없는 질문의 여정이랄까.

그렇다고 그 어떤 초월성이나 신비적 세계의 존재를 확인한 것도 아니다. 다만 주체할 수 없는 본능과 '그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작가적 실존의 결과물이 다름 아닌 '알레고리'인 것이다. 알레고리는 이상과 현실, 건설과 파괴, 희망과 슬픔, 미몽과 각성, 실재와 허구같은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대립 속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삶이 그리 녹록치 않은 때 잠시 알레고리의 다리 저편으로 건너가 머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듯 싶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상은 모두의 주관에 의해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신은정은 이러한 세상의 알레고리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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