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로 이라크, 리비아,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면서 특이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중 가장 기이한 것 가운데 하나가 '부르카'였다.
부르카는 여성 의복 중 하나로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이 입는 겉옷이다. 중동 나라의 여성들이 착용하는 복장은 히잡, 니깝, 차도르, 부르카 등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뉘지만,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 부르카이다.
히잡은 머리카락만 감추는 일종의 머릿수건으로 이슬람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복장이다. 아랍 세계의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지만 다른 종교나 다른 문화권의 여성들도 착용하는 경우가 있다. 동남아 모슬렘 여성이나 가톨릭의 수녀들도 비슷한 머릿수건을 착용한다고 볼 수 있다.
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견되는 니깝은 머리카락은 물론 두 눈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부분을 가리도록 하는 복장이다. 차도르는 머리에서 발목까지 덮는 헐렁한 겉옷으로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시리아 등의 여성들이 착용한다. 차도르의 경우 히잡과 조합을 하면 얼굴만 드러나고 니깝과 조합하면 두 눈만 드러날 것이다.
부르카는 이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신체를 가장 많이 가리고 가장 적게 드러내도록 만들어진 복장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덮도록 만들어진 헐렁한 겉옷으로 주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입는다. 하늘색으로 만든 부르카가 많고 검정색으로 만들어진 것도 발견된다. 부르카는 두 눈을 드러낸 니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두 눈조차 바깥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짠 망으로 두 눈을 가리도록 만들어진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이 걸어가는 모습은 얼핏 보면 파란색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부르카를 입은 여러 명의 여성 앞에서 누가 엄마인지 헷갈려하는 어린아이를 그린 만평에서 여성의 개성을 몰수한 부르카의 상징성이 드러난다.
여성의 몸을 가리도록 고안된 복장은 종교적 전통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지만 부족적 전통에서 찾는 학자들도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필수적인 것은 물리적 힘이었고, 그 때문에 이 힘을 가진 남성이 권력까지 가지게 되는 전근대적 부족사회에서 생긴 전통이란 것이다. 이슬람 태동 전까지 '쓸모없는' 여아가 태어나면 죽여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말도 전해진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도구, 남아를 출산하는 매개, 허드렛일을 하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코란에 따르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내비치는 신체(정확히는 몸의 윤곽)를 남편을 포함한 가까운 가족들에게만 보일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족의 전통과 결합하면서 더욱 엄격하게 해석되고 적용되었다. '도구'는 소유물이며, 여성을 도구로 보았던 전통 역시 그렇게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열녀'가 칭송받고, '삼종'의 의무를 따르도록 했다. 복장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의 장옷이나 쓰개치마는 영락없이 차도르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러니까 히잡에서부터 부르카까지, 또 장옷이든 쓰개치마든, 여성의 몸을 가리도록 고안된 복장은 시대와 전통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전통이 삶의 일부가 되면 관습이 되고, 강요 없는 관습은 선택의 대상이다. 히잡이나 차도로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히잡을 보고 성장한 딸이 본인 역시 히잡을 착용한다면 이를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부르카의 경우는 예외로 간주된다. 탈레반 정부 아래서 여성들은 부르카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고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이 총살까지 당했다는 보도도 전해진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다른 차원의 복장 논란이 일었었다. '노브라'와 '레깅스' 논란이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가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거나 꽉 끼는 레깅스를 입어 눈길 둘 곳을 찾지 못해 민망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노브라나 레깅스에 찬성하는 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못마땅하겠지만, 부르카 전통을 경험한 필자에게는 자유의 힘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미군 철수를 눈앞에 두고 탈레반에 함락된 수도 카불에서 탈출을 위해 필사적으로 공항으로 몰려든 그 수많은 사람에게 탈레반은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유 의지에 반하는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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