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배 명승지에 번지는 동양 인문학 나들이

경북 포항시 남기 장기면 ‘명심보감 공부회’ 눈길
매주 월요일이면 한시 등 옛 성현의 향기 퍼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충효관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성두식 강사의 명심보감 해설을 들으며 한학을 공부하고 있다. 신동우 기자
포항시 남구 장기면 충효관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성두식 강사의 명심보감 해설을 들으며 한학을 공부하고 있다. 신동우 기자

"어려운 한문 공부라구요? 옛 성현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 그게 바로 웰빙 아닙니까."

29일 오전 11시. 포항시 남구 장기면 충효관 한켠에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번진다. '맹자 왈, 공자 왈'로 시작하는 것을 보면 한학을 읽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묵향이 먼저 반긴다. 머리카락 희끗한 어르신들이 칠판 가득 쓰여진 한문을 멋드러지게 옮겨내는 솜씨가 여간 익숙치 않다. 공손한 인사로 한학 수업이 시작되자 먹가는 소리와 한시를 읊는 소리가 합해져 금세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명심보감 공부회는 매주 월요일이면 이렇게 모여 명심보감을 중심으로 한시와 옛 명구절을 배운다. 장기면 주민 2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명심보감 공부회는 향교의 기능과 비슷하다. 향교는 조선시대 세워진 지방 국공립 교육기관이다. 공자 등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역할도 있지만, 주된 기능은 지방민의 교화와 가르침에 있다.

장기면은 고려시대 때부터 유배지로 유명했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 선생 등 무수한 성현들이 유배생활을 보내며 그들의 사상을 곳곳에 남겼다.

훈장 격인 공부회 강사는 같은 장기면 주민인 성두식(74) 씨가 무보수로 맡고 있다. 중학교 졸업 후 서당교육을 받은 그는 벌써 50년째 지역에서 한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재야 학자이다. 지금은 서서히 주류에서 밀려가는 동양 인문학의 숨은 권위자이기도 하다.

이날 공부는 명심보감 중 소동파의 구절에서 시작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시절 장기면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한시로 마무리됐다.

성두식 강사는 "즐겁게 인생을 보내기 위해 한학을 공부하는 것 뿐 나는 그저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늙은이"라면서 "옛 성현의 가르침은 멀리 있지 않다. 생활을 하며 깨닫고 느끼는 모든 것이 마음의 수양이다. 그러한 수양을 통해 스트레스를 버리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이웃들과 서로 나누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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