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디지털 전환, 기업이 주도해야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특허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2014년, '우리의 모든 특허는 당신의 것'(All our patents are belong to you)이라며 테슬라는 자사 보유 특허를 누구나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테슬라만으로는 탄소 위기 대응 역량이 부족하기에 더 많은 기업이 전기자동차 시장에 진출하기를 바란다는 선언의 진성성은 알 수 없으나, 이 선언으로 테슬라는 업계에서 수많은 우군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테슬라 중심의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을 제공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큰 이슈다. 디지털 치료제, 전기·자율주행차, 로봇 등은 각각 의료, 자동차, 기계 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전환을 제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디지털 전환 경쟁에서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 산업 판도를 일거에 바뀔 수도 있기에 기업으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다.

디지털 전환이 디지털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경쟁 방식과 문화에 적응하는 것까지 포함하기에 문제는 더욱 어렵다. 속도, 융합, 인재로 표현되는 디지털 전환 경쟁의 속성을 고려할 때, 테슬라처럼 생태계 확장 관점에서 접근하여,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 기업이 스타트업을 키우는 데 적극 투자해야 한다. 미래의 경쟁자이자 인력 유출을 초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의 등장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만, 스타트업은 산업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스타트업을 통해 기존에는 전혀 관련 없던 새로운 기술과 인력이 해당 산업으로 연계돼 시장을 키우거나,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미래의 경쟁자를 배척할 것인지, 아니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우면서 그 성과를 함께 누릴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후자를 택하는 기업이 점점 많아지는 현실에서 우리만 외면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울산·경남에 소재하는 10여 개 중견 기업들이 수백억 원의 펀드를 공동으로 조성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례는 디지털 전환 경쟁에 나서는 기업의 좋은 전략이다.

다음으로 전통적 협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디지털 전환을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정도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제품과 신시장의 창출과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사람에 따라 전기자동차를 '모터를 사용하는 자동차'나 '움직이는 전자제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전기자동차가 기존 자동차와는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향후 주행거리나 모터 성능보다 전기자동차가 제공하는 멀티미디어 서비스와 콘텐츠가 더 중요해질 상황을 고려하면 부품 공급 사슬 확보에 맞춘 기존 방식과는 다른 협업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자동차부품 기업이 콘텐츠 기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시도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재의 성장을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은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전통적인 분업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맞지 않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기술이 너무나 빨리 발전하고 학문 간 경계가 무너진 상황이다. 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과 현장 적용 중심인 기업 사이에서 기존의 역할 분담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소위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등 수도권 기업이 지역 기업으로서는 부담하기 어려운 급여를 제시하면서, 지역의 우수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인재 확보 전쟁이 경력직으로 바뀐 것을 감안하면 기업 내부에 인재의 성장 체계를 구축하고, 개별 기업이 어렵다면 기업 사이의 협업을 통해 지역 내 우수 인재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우수 인재 생태계'라는 숲을 만드는 데 정부나 지자체는 고작 나무 몇 개 심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대응하는 생태계는 결국 기업이 주도해야 한다. 개별 기업의 성장 관점에서 벗어나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맞는 투자, 협업, 인재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넘어 디지털 전환에서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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