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후주택' 금 가고 물 새도…주민동의 없이는 주거 개선 못해

[대구 노후주택 문제 심각] 온수배관 낡아 세면대에 녹물 줄줄…공사하려 해도 찬성율 낮아 불가능
40년 된 낡은 아파트, 일부 부지 소유주 반대로 재건축 번번이 실패
1968년에 지어진 단독주택, 비 올 때마다 마당 침수 발생해

류모(50) 씨는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낡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1968년에 지어진 류 씨의 집은 빌라들 사이 경사진 골목 안쪽 낮은 지대에 있어 빗물 유입에 취약하다. 윤정훈 기자
류모(50) 씨는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낡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1968년에 지어진 류 씨의 집은 빌라들 사이 경사진 골목 안쪽 낮은 지대에 있어 빗물 유입에 취약하다. 윤정훈 기자

주택 노후로 주민들이 겪는 불편과 안전 문제가 심각하지만 개선 공사나 재건축 추진은 쉽지 않다.

관련법에 따라 일정 수준의 주민 동의율을 얻어야 하는데, 사업에 얽힌 이해관계나 입장 차이 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배관 노후로 샤워기에서 녹물 나와

대구 북구 칠성동2가에 있는 1천10가구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는 올해로 지어진 지 25년이 됐다. 온수배관 노후화로 세면대나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오기도 한다. 1년에 두 세 번씩 배관 물청소를 하지만 배관 자체가 오래됐기 때문에 교체가 필요하다.

주민 홍모(41) 씨는 "녹물이 너무 심하게 나와서 샤워기에 필터를 끼워서 사용하고 있는데, 보통 샤워기 필터는 3개월 정도 쓸 수 있지만 우리 아파트의 경우 10일 정도만 써도 필터가 새카맣게 된다"며 "배관 물청소를 할 때마다 20일간은 따뜻한 물을 아예 못 쓴다. 배관 청소 후 물을 쓸 수 있게 됐을 때도 틀면 3, 4일 정도는 흙탕물이 나온다"고 했다.

대구 북구에 있는 25년 된 한 아파트에선 온수배관 노후화로 세면대나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온다. 주민 홍모(41) 씨는
대구 북구에 있는 25년 된 한 아파트에선 온수배관 노후화로 세면대나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온다. 주민 홍모(41) 씨는 "샤워기에 필터를 끼워도 녹물 때문에 10일 정도만 써도 필터가 새카맣게 된다"고 했다. 독자 제공

배관 교체 필요성이 대두되며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전환 공사가 추진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중앙난방식 구조인데, 이 상태에서 배관 교체가 이뤄지면 공사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에 개별난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전환 공사를 실시하기 위해선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대한 법률에 따라 주민 80%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매번 70% 정도에 그치면서 공사는 좌초됐다. 지난 9월 24일부터 10월 17일까지 5차 동의서 접수가 이뤄졌으나 주민 찬성률이 65%에 그쳤다.

동의율이 80%를 매번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일부 노인 거주자들이 개별난방 공사 진행 시 가구별로 공사비가 발생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 세입자들 중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개별난방 동의서를 전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재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접수 기간을 연장하고 이달 1일부터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등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권용석 대구경북연구원 미래전략실 연구위원은 "안전 문제가 우려되거나 주민 생활에 불편함이 심한 경우일지라도 동의율 비율을 낮춘다든지 예외를 두는 것은 공공이 개인 자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다.

◆천장 누수에 벌레에… 40년 된 아파트지만 재건축 막막

대구 수성구 수성4가의 40년 된 40가구짜리 한 아파트 역시 건물 노후로 인해 주민 고통이 크다. 아파트 벽 곳곳에 금이 나 있고 배관도 낡아 비가 오면 옥상에서 누수가 발생한다. 시멘트가루가 녹아 발생한 흰 자국이 계단 전체에 가득하다. 주민들이 쓴 물을 배관을 통해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모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파트 지하엔 발목까지 물이 차있다.

지난달 13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40년 된 아파트. 아파트 지하엔 주민들이 쓴 물을 배관을 통해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3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40년 된 아파트. 아파트 지하엔 주민들이 쓴 물을 배관을 통해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다. 윤정훈 기자

주민 A(56) 씨는 "수압이 낮아 변기도 자주 막히고 겨울이 되면 난방이 안 되다 보니 너무 추워서 이사 가는 사람도 많다"며 "천장 누수가 심해 4, 5층은 아예 세를 놓을 수도 없고 이로 인한 곰팡이도 심각해서 곰팡이차단벽지를 써도 역부족"이라고 했다.

현재 이곳은 40가구 중 실제로 살고 있는 경우는 20가구에 불과하다.

이곳은 2012년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2013년에 재건축 승인을 받으며 재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보였으나, 아파트 담장 쪽 약 655㎡ 부지 소유주가 뚜렷한 이유 없이 반대해 좌초돼 왔다. 그 이후로도 아파트 측은 꾸준히 재건축을 추진해 왔으나 번번이 재건축 추진에 필요한 가구 동의율을 넘지 못해 지금까지 재건축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 A씨는 "2019년에 전체 가구 중 77.5% 동의를 받아냈으나 사유지 소유주가 웃돈을 줘서 2, 3가구를 매입했고 결국 75%를 넘기지 못해 재건축이 무산됐다"며 "그 이후로 가구들을 더 매입해 현재 그 소유주가 가지고 있는 집은 6, 7채에 달해 75%를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조합 측은 하는 수 없이 사유지를 제외하고 재건축을 추진하려고도 했으나 시공사들은 사유지를 제외하면 부지가 너무 좁아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다. 사유지를 제외한 이 아파트 부지는 1천798㎡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파트 앞 사유지는 소유주가 관리를 하지 않아 나무가 거의 아파트 높이까지 자라서 벌레 꼬임, 악취, 전망 가림 등 문제가 있다.

A씨는 "아파트 건물 전체의 노후로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지자체는 사유 재산과 관련한 민간의 일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문제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저지대 단독주택 비만 오면 마당 침수

지난달 12일 대구 남구 대명동 1968년에 지어진 낡은 단독주택에 사는 류모(50) 씨는 집 마당을 파서 직접 집수정을 만들고 있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달 12일 대구 남구 대명동 1968년에 지어진 낡은 단독주택에 사는 류모(50) 씨는 집 마당을 파서 직접 집수정을 만들고 있었다. 윤정훈 기자

1968년에 지어진 낡은 단독주택(대구 남구 대명동)에 사는 류모(50) 씨는 자신의 집 앞에 2017년 빌라가 신축된 이후 비가 올 때마다 침수 피해를 당했다. 류 씨의 집은 빌라들 사이 경사진 골목 안쪽의 낮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빗물 유입에 취약하다. 빌라 뒤쪽 처마에 빗물받이가 없어 집 마당으로 빗물이 그대로 유입됐다. 마당 침수와 축대 붕괴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류 씨는 오래 전부터 구청과 빌라 건물주에게 빌라 뒤쪽 처마에 빗물받이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한 결과, 이달 초 빌라에 빗물받이가 설치됐고 마당으로 유입되는 빗물 양이 절반 정도 줄었다.

류 씨는 "배수 등 빗물은 건축 허가 단계에서 철저하게 점검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며 각각 집 마당으로 빗물이 떨어지게 해야 하는데 토목, 건축, 감리 전문가 및 담당 공무원들이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준공까지 돼 배수 문제로 인한 이웃 간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조극래 대구가톨릭대 건축학과 교수는 "재건축은 민간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일수록 신축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안전이 우려되거나 불편이 발생해도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다른 쪽 의견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에 고질적인 갈등으로 이어진다"며 "좁은 골목에 있는 오래된 저층 단독주택들은 노후화로 인한 문제뿐만 아니라 요즘처럼 계획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다 보니 주변 건물과 조화 없이 설계돼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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