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드라마 ‘연모’…사극판 ‘커피프린스1호점’의 홀림

KBS 월화드라마 ‘연모’, 일본에서도 난리 난 남장여자 사극의 인기요인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 포스터○.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 포스터○. KBS 제공

사극판 '커피프린스1호점'이 아닐까.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남장여자 콘셉트를 가져온 사극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인기다. 특히 일본에서 큰 반응을 얻고 있는 '연모'의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토록 홀리고 있는 것일까.

◆남장여자 콘셉트 사극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KBS 월화드라마 '연모'에서 정지운(로운)이 왕세자인 이휘(박은빈)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그 어떤 멜로드라마의 그것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면이 있다. 이휘가 남장여자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정지운의 고백은 남녀의 성별을 뛰어넘을 정도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다.

물론 이 장면은 2007년 방영돼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떠올리게 한다. 카페 직원으로 들어온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만 가게 된 최한결이 결국은 항복 선언하듯 그에게 억눌러왔던 마음을 전하던 장면.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이른바 '남장여자 콘셉트' 드라마의 멜로 코드가 '연모'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연모'는 사극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더 엄격한 보수적 상황이 전제되고, 남녀는 유별한 존재라는 게 강조된다. 그러니 남자가 남자(사실은 남장여자)를 연모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더 강렬해진다. 게다가 정지운과 이휘는 신하와 왕세자의 관계다. 그 커밍아웃이 야기할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그러니 그걸 뛰어넘는 사랑 역시 더 절절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사극에서 남장여자 코드가 활용된 건 '연모'가 처음도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계보가 되어 있을 정도다. '바람의 화원'(2008)에서 신윤복(문근영)이 여자였다는 파격적인 가상 설정으로 김홍도(박신양)와의 사극 멜로를 알리며,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하나의 코드로 등장한 남장여자 콘셉트의 인기를 이었다.

'성균관 스캔들'(2010)은 김윤희(박민영)라는 남장여자가 성균관에 들어가서 이선준(박유천), 구용하(송중기), 문재신(유아인)이라는 세 미남자들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달달한 멜로사극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소설이 원작으로 '남장여자' 코드가 팬층을 끌어 모았던 '장르소설'의 한 경향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그 흐름이 사극이라는 장르에서도 파격을 시도할 정도로 강했다는 것.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그리고 이 남장여자 코드는 역시 원작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구르미 그린 달빛'(2016)으로 이어지며 그 인기가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다. '연모'는 그 계보를 잇고 있는 남장여자 사극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건 조선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신하인 정지운이 감히 왕세자인 이휘를 안아주거나 하는 광경이 실제로는 불가능했음에도 드라마에 빠지면 그런 사실 자체를 잊게 된다는 점이다.

이건 '연모'라는 작품이 그 매력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시청자들을 '홀리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지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걸 훌쩍 뛰어넘어 가슴 설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드라마가 바로 '연모'다.

◆일본에서 특히 난리 난 이유

사극인데다 전형적인 멜로를 담고 있어 '국내용 드라마'가 아닐까 싶지만, 놀랍게도 '연모'는 해외에서의 반응도 만만찮다. 특히 일본은 최근 '오징어게임'에 이어 '지옥'까지 연달아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드라마들로 이른바 K드라마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 속에서 '연모'는 단연 두드러지는 작품이 됐다.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지난달 28일 기준 일본 넷플릭스 TV시리즈 순위를 보면 1위가 '지옥', 2위가 '오징어게임'이고 3위가 '연모'다. 몇 계단 떨어진 순위지만 '연모'는 한때 '오징어게임'마저 제치고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놀라운 건 일본 넷플릭스 순위 차트를 K드라마들이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4위 '진심이 닿다', 5위 '사랑의 불시착', 7위 '이태원 클라쓰', 9위 '초면에 사랑합니다'가 올랐다. 물론 최근 히트작들이 앞에서 끌어주는 알고리즘의 효과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된 '연모'에 대한 최근 반응은 독보적이다.

일본의 이런 반응은 최근 글로벌한 인기를 끈 K콘텐츠가 주로 장르물들이라고 해도 전통적으로 아시아권에서는 멜로와 사극을 기대하는 팬층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류를 처음 촉발시켰던 '겨울연가'(2002)가 멜로로서 K드라마를 각인시킨 작품이었다면, '대장금'(2003)은 사극으로서 글로벌한 입지를 제고시켰던 작품이었다. '오징어게임'의 장기적인 흥행과 더불어 넷플릭스에서 지금껏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갯마을 차차차'같은 작품의 성공은 아시아권의 콘크리트 한류 팬덤이 작용한 면이 적지 않다.

아시아권 K드라마 팬층에서 멜로와 사극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멜로이자 사극인 '연모'의 인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극이라는 독특하고 차별적인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달달하지만 파격적인 멜로가 아닌가. 특히 감정 표현에 있어서 거의 장인 수준으로 일컫는 한국 멜로는 일본 드라마업계가 '넘사벽'이라고 말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멜로만이 아닌 시대성까지 담아낸 '연모'

그런데 '연모'는 단지 달달한 멜로만을 담은 사극은 아니다. 남장여자 콘셉트가 주는 보다 극화된 멜로 감정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연모'는 여기에 현 청춘들이 겪는 '나다움'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 놓았다.

결국 남자여자였다는 걸 아버지 혜종(이필모)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혜종이 궐을 떠나 너의 삶을 살라고 하자 이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쌍생 여아라는 이유로 죽을 위기에 처한 채 버려진 후, 다시 운명처럼 궁으로 돌아와 죽은 오빠를 대신하는 삶을 살아온 이휘. 이 인물이 자신으로서의 삶이 아닌 누군가를 대신하는 삶을 살았다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연모'는 그래서 뒤로 갈수록 왕이라는 허울이자 인형의 삶을 벗어나려는 청춘들(세자와 정지운 같은)과 그들을 앞세워 비선실세로서 권력을 쟁취하고 휘두르려는 기성세대(한기재 같은)와의 첨예한 대결구도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 대결구도는 기성세대들에 의해 마음대로 재단되어 그들의 입맛대로 그 청춘들을 규정하곤 하는 현 세태에 대한 메시지로도 읽힌다. 내년 대선을 가를 존재들로서 청춘들의 표심을 이야기하지만, 그저 표를 얻기 위해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하며 지칭할 뿐 정작 그들을 소외시키는 현 정치권의 행태가 그 단적인 사례다.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월화드라마 '연모'의 한 장면. KBS 제공

이 대결구도 속에서 남장여자 콘셉트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나다움'의 삶을 드러내고 이를 위해 싸워나가는 가치 대결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물론 이런 대결구도 역시 남장여자라는 콘셉트가 그 자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남장여자는 그 자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맞서게 되는 상황을 담을 수밖에 없어서다.

중요한 건 어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조선시대 상황에서의 남장여자'라는 그 상황조차 믿게 만들고 나아가 빠져들게 하는 힘이다. 만일 그런 힘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너무나 어색한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모'는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한 드라마다. 저도 모르게 홀려버릴 정도로 그 상황에 빠져들게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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