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수술 날짜가 잡혀 열흘 정도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서울도, 병원도 낯설고 두려우실 것 같아 내가 함께 가기로 하고, 새벽같이 어머님 댁으로 건너갔다.
"어머님, 짐은 빠짐없이 잘 싸셨지요?" "이것 좀 봐라. 내가 몇 년 만에 하는 입원이라 짐을 며칠 전부터 싸 놨다. 옷가지랑, 비누랑 칫솔, 슬리퍼도 새로 샀어. 병원에 가면 여럿이 있으니까 함께 나눠 먹으려고 과도도 하나 챙겼지. 올해 사과가 아주 맛있더라."
야물게 싼 짐을 보면서, 빈틈없고 꼼꼼한 성격에 뭐든 잘하시는 분인데 내가 괜한 걱정했구나 싶어 머쓱해졌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다. 커튼이 모두 닫혀 있어 사과를 나눠 먹기는커녕 인사조차 나눌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머님이 입원하셨던 몇 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병실에서 어머님 짐을 하나하나 풀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아, 우리 어머님은 손이 크시지. 김밥 아홉 줄, 삶은 달걀 열 개, 고구마 네 개, 사과 다섯 개, 감 네 개. 반찬으로는 송이고추장과 장아찌. 석 달은 족히 드시고 갈 양이다. 샘플 화장품도 봉지 가득 들어 있었는데, 내가 여쭤보기도 전에 말씀하신다.
"친구가 화장품 가게를 하는데, 내가 병원에 입원한다니까 이만큼을 싸 주더라고. 그리고 이 가방에 있는 돈 봉투는 친구들이 병원비에 보태고 맛난 거 사 먹으라고 돈을 거둬서 줬어."
한눈에 봐도 두툼한 봉투가 작은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 어머님은 돈 봉투가 계속 신경이 쓰이셨는지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가방을 챙겼다.
"어머님 여기서는 현금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얼른 내려가서 입금하고 올게요." "아, 그래 줄래?" 그제야 어머님은 가뿐한 몸으로 검사를 받고, 화장실에도 가셨다.
병원에서의 첫날밤이 찾아왔다. 어머님과 나는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나란히 누웠다.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좁고 딱딱한 간이침대인데도 종일 긴장했던 탓인지 나는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는데, 어머님은 밤새 뒤척거리신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예민한 줄 몰랐네. 이불이 피부에 닿으니 간지러워서 잠을 못 자겠는 거야. 이럴 줄 알았다면 이불을 하나 챙겨올걸."
나는 급한 대로 병원 근처에 사시는 친정어머니께 부탁해 이불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바로 새 이불을 주문했다.
"에고, 사부인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짐을 싼다고 쌌는데."
까슬까슬한 병원 이불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새로운 필요를 만들었다. 짐을 챙긴다는 것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인데, 막상 닥치면 계획과 다른 일들이 펼쳐졌다.
어쩌면 산다는 건 매일 그날의 짐을 준비하며, '필요'와 '불필요'를 끊임없이 챙기는 일이 아닐까. 짐이 가벼운 날도 있고, 불필요하게 늘어난 짐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날도 있겠지만, 매일 다른 새 하루가 주어져 환기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함께 나눠 먹으려고 가지고 왔던 삶은 달걀 하나를 톡톡 깨드려 껍질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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