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이야기가 생각나는가. 우화를 좋아한다면 '북풍과 태양'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거센 북풍이 아닌 따스한 태양이었다. 반면 북풍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경우도 있다. 시사에 관심이 많다면 2021년 1월의 기사가 떠오를 것이다. 눈이 쏟아지던 서울역 광장, 커피값을 구하는 노숙인에게 자신의 외투와 장갑을 벗어주고 홀연히 떠난 이가 있었다.
이동훈 시인은 외투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본다. 1842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외투 때문에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고골의 '외투'는 약과다. 1940년 김소운은 북만주로 떠나는 유치환을 배웅하며 눈빛으로나마 내내 외투를 입혀준다. 1955년 겨울 초입에는 김수영이 아내가 중고 시장에서 사온 외투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밖에서 만난 벗들 사이에서 혼자 외투를 입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어찌 견딜까 하는.
작가들의 생애와 그 작품에 관심이 많은 이동훈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몽실 탁구장'은 '시인의 생가는 시일 뿐', '복은 한 입 거리 수단일 뿐', '실망은 기대의 후속 편일 뿐' 등 3부로 나뉘어 60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이전의 시집과 산문집에서도 두드러지던 시인의 인문학적 시선이 더욱 깊어져 곳곳에서 드러난다.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의 작품을 시 속에 녹여내며 그 뒷이야기도 늘어놓는다. 상화 생가의 라일락나무 아래에서 봄을 부르는 고월의 고양이, 은행나무 아래 졸고 있는 목우의 고양이, 그와 함께 그들의 별난 우정까지를 누가 봤을지 묻는 시인의 질문에 작품으로만 남은 옛 문인들의 일상을 실감하게 된다.
화가와 그림 이야기가 문학과 연결되는 지점도 자연스럽다. 아는 만큼 보는 시인의 눈에 낮은 집이 옹기종기 앉은 김결수의 그림은 무등 언덕 위 층간소음없는 권정생의 아름다운 오두막이 마을을 이룬 곳이 된다. 박흥순의 '천진의 농촌'을 보고는 삼수에서 양치기로 지냈다는 백석 시인을 생각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동화지만/ 배고픈 아이들은 동화 밖에서 울어요./ 계모가 아이를 버렸다고 닦아세우는 건 당신들의 지각일 뿐/ 일도 없고, 일을 해도 빵이 생기지 않고/ 씹을 빵이 없으니 가족을 씹고/ 어머니 아버진 차라리 제정신이 아니고 싶은 게지요.// — 들리나요, 빵요!'(62쪽)
케테 콜비츠의 그림 'Bread!'와 관련된 시 '빵을!'에서는 '헨젤과 그레텔'을 끌어온다. 정작 오븐에 넣어야 할 것은 빵이니 마녀를 꺼내주어야 한다고. 마인드맵처럼 가지를 타고 끊임없이 확장되는 시를 읽다 보면 "경계 없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인문학의 정수 같은 시"라는 평이 넘치지 않는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아는 만큼 깊게 보이지만 알지 못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시인이 삥 하고 치면 독자는 뽕 하고 받는다. 잘 몰라서 네트에 여러 번 꽂더라도 괜찮다. 몸 쓰며 기분 내는 일이란 사람 사이 간격도 좁히는 것이어서 다 읽고 나면 그들과의 거리가 부쩍 좁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보는 만큼 알게 되는 재미, 아는 만큼 보이는 희열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시집과 탁구 한 판 쳐보는 게 어떨까.
박선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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