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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번호 54XXXX' 절도범 호적회복 지원 나선 대구검찰

이름도 모른 채 고아원 살다가 노숙생활…주민번호는 '54XXXX-1XXXXXX'
검사·수사관, 성·본 창설 위한 신원 보증 해주기로

노숙자. 연합뉴스
노숙자. 연합뉴스

대구지검 전경. 매일신문 DB
대구지검 전경. 매일신문 DB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살아 지금까지 별다른 연고도 없이 노숙 생활을 한 남성 A씨.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았던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고아원에서 탈출했고, 평생 떠돌이 생활을 하며 노숙인으로 지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경 태어났다는 점은 A씨가 자신에 대해 아는 유일한 단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무적(無籍) 상태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A씨는 호적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그간 주변에 관련 절차를 문의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자체에 문의하라'고 떠넘기거나 '소송을 하라'는 무책임한 말로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A씨는 이후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거리 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수차례 범죄를 저질러 구금되거나 재판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지문과 '54XXXX-1XXXXXX' 형식의 '주민등록번호 아닌 번호'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지난 9월 A씨는 절도 혐의로 구속돼 대구지검에서 수사를 받았고, 사정을 딱하게 여긴 검찰 내 공익 대표 전담팀은 A씨를 위한 지원 절차 마련에 돌입했다.

지난 8월 전국 검찰청 최초로 대구지검에 신설된 공익 대표 전담팀은 호적 회복 지원을 비롯해 유령 법인 해산 청구, 독거노인 사망자 상속 재산 보호, 법령에 위반한 판결문에 대한 비상 상고 신청 건의 등 공익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검찰은 A씨의 성과 이름을 찾아주고자 피의자 심층 면담을 비롯해 관련 법률 검토를 진행했다. 검찰의 협조로 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는 A씨의 가족관계등록 창설 등을 위한 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대구지검은 A씨의 출생을 증명할 자료가 없고, 긴 노숙 생활로 지인이나 거주지가 없는 점을 감안해 신원을 보증해주는 방안까지 추진 중이다.

1일 대구가정법원에서 진행된 A씨의 성과 본 및 가족관계등록 창설 절차는 2~3개월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피의자가 향후 주민등록이 되면 기초생활수급비 지원 등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후 자립 기반 마련을 통해 재범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에도 지방자치단체, 복지 기관 등과 연계해 국민의 권리가 다방면에서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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