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그래도 가진 무기가 이뿐이라면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오미크론 신종 변이 확산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다시 코로나19 공포가 우리를 잠식하고 있다. 가뜩이나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연일 확진자 수와 위중증 환자 수가 폭증해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오미크론의 등장은 희망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좀 더 정확한 연구가 이뤄져야겠지만 전문가들은 오미크론이 델타(10개), 베타(6개)보다 많은 32개 고유 스파이크 변이를 갖고 있어 전파력이 몇 배에서 몇십 배까지 더 강할 것으로 본다.

과학자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선진국과 저개발 국가 간의 심각한 백신 접종률 격차가 새 변이 발생의 원인일 수 있다고 잇단 경고를 내놓고 있다.

세계 백신 공유 기관 코백스(COVAX)의 창설자인 리처드 해체트 박사는 "오미크론 변이종의 출현은 정확히 과학자들의 예언에 부합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잘 안 되는 지역에서 진화와 확장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고 있다"고 했고, WHO 대사인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역시 "개발도상국 국민에게 백신을 건네주는 데 실패한 결과가 돌아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자성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미 인도발 델타 변이, 남미발 람다 변이 등 백신 접근성이 낮은 저개발 국가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실 백신 생산 물량의 89%가 주요 20개국(G20)에 쏠려 있다. 심지어 전 세계 경제 순위 11, 12위에 달하는 우리나라 역시 올해 초 백신 수급 문제로 고충을 겪어야 했다.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mRNA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국민적 공분도 샀다. 현재까지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의 백신 접종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상황 속에서, WHO는 아프리카 54개국 중 올 연말까지 백신 접종률 40% 이상에 도달하는 나라가 10%도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솔직히 말해 백신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병원의 직원 2명은 화이자 백신을 접종 완료한 뒤 석 달도 채 되지 않아 돌파감염됐다. 이번에 오미크론에 확진된 부부 역시 모더나 접종자였지만 안전을 담보하진 못했다. 백신이 궁극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백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집단면역이라는 이상적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위중증률을 낮추는 역할은 해 주는 게 백신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 위기 상황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함께' 가는 길이다. G20의 높은 접종률에 추가 접종(부스터샷) 권고까지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전 세계적인 백신 불평등을 바로잡아 오미크론 같은 역풍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제껏 '나부터 살고 보자'는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면, 지금부터 마음속에 새겨야 할 단어는 '공생'이다. 오미크론이 처음 발생했다고 보고된 아프리카의 속담이 다시 우리를 일깨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의료가 공공재라고 모두들 인식하듯, 백신도 독식으로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함께 나눠야 코로나19의 위협을 뛰어넘어 같이 공존할 수 있다. 나만 살겠다고 남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면 결국 같이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의료진도, 자영업자도, 고연령자도 치열하게 싸웠던 긴긴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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