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내리꽂기 성지' 대구경북, 이제 '뒷북 반발'은 그만

국힘 후보 20명 '역대급 경쟁'… 초점은 지역민 아냐
"국힘, 尹 러닝메이트 내리꽂을 수도" 눈치만 살펴

대구 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국회의원보궐선거(중남구선거구)의 입후보안내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 남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국회의원보궐선거(중남구선거구)의 입후보안내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오죽하면 중남구가 그동안 보수정당의 비례대표 자리처럼 쓰여온 대구경북 정치권을 상징한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나오겠습니까.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공식 아래 연속으로 내리꽂기식 전략공천을 하니 제대로 된 재선의원 하나 없는 지역구가 됐고, 첫 재선이었던 곽상도 전 의원은 불명예 퇴장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 아니냔 겁니다."

선거를 석 달여 앞둔 대구 민심이 들끓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보궐선거 얘기다.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의 화천대유 50억원 퇴직금 논란 속에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한때 대구의 '정치 1번지'로 불리기도 했던 중남구는 '무주공산'이 됐다. 내년 대선과 함께 보궐선거가 치러지는데, 국민의힘에서만 벌써부터 20명이 넘는 출마 예상자들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역대급 경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그 역대급 경쟁의 초점이 '지역민'에 맞춰져있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중남구 주민 상당수는 아직 보궐선거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출마를 검토 중인 인사들 가운데서 본격적인 지역 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직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근우 정치부 기자
김근우 정치부 기자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8일 현재 대구 중남구 보궐선거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이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최창희 지역위원장, 국민의힘 소속 배영식 전 의원 뿐이다.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데 20명이 넘는다는 국민의힘 출마예정자들이 아직 한 사람밖에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건 의외다.

지역 정가에선 이번 보궐선거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다는 점, 그리고 중남구가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의 전략공천 대상지였다는 점을 이유로 꼽는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선후보의 대구경북 '러닝 메이트'로 점찍은 인사를 내리꽂을 수 있기 때문에 출마를 검토 중인 인사들이 중앙당과 선대위의 눈치만 살피며 몸을 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 출마 예정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경험에 미뤄보면 내가 미리 움직이고 준비한다고 안될 공천이 되는 게 아니더라. 속되게 말해 '공천을 주면 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대구를 대표할 의원을 뽑는 선거에 정작 대구시민은 없고, 출마자들은 시민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힘 지도부의 지휘봉이 누구를 가리키느냐만 지켜보는 셈이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 보수정당들은 그동안 대구에서 열린 주요 선거에서 '공천 논란'을 안 빚어본 적이 거의 없다. 지역민들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공천만 주면 당선되니 전횡을 일삼았고, 지역에서 '뒷북 반발'을 하면 적당한 보상을 주며 무마했다. 잠시 반발하던 유권자들도 다음 선거에서는 또 똑같은 선택을 했다.

결국 그런 전통(?)이 제대로 된 재선의원을 배출해보지 못한 중남구의 비극을 낳은 것 아닐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5월 전당대회 때 "대구경북은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공천을 받는 데 가장 좋은 전략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계속 안주해서는 큰 정치인을 배출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안티와 팬을 둘 다 미치게 만든다"는 가수 나훈아의 말을 떠올려본다. 적이 없는 정치인도 슈퍼스타는 될 수 없다.

풍패지향(豊沛之鄕)의 지위를 잃은 대구경북은 앞으로도 계속 무난한 정치인만 만들어낼 것인가. 언제까지 평일 내내 서울 집에만 있다가 주말에만 잠시 대구에 머무르는 봉건 영주들에게만 감투를 씌워줄 셈인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기계장치가 정치라면, 그 톱니바퀴인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건 유권자다. 이제 뒷북 반발은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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