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디스토피아 코리아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 등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옥'을 두고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올해 한국 드라마는 디스토피아를 많이 선보였지만 '지옥'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한다"고 했다. '지옥'은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고를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 역시 디스토피아를 그리기는 마찬가지다.

빈곤과 소외, 양극화 등으로 얼룩진 한국 사회는 유토피아(utopia)가 아닌 디스토피아(dystopia)임이 분명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린 모습보다 현실이 더 디스토피아란 말까지 나온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까 염려도 되지만 현실이 지옥이다 보니 시비를 걸기 어렵다.

법과 질서가 무너진 사회의 혼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 선동에 쉽게 현혹되는 대중의 모습이 '지옥'에 투영돼 있다. 대중이 이 드라마에 공감하는 것은 디스토피아인 현실을 담고 있어서다.

디스토피아를 가져온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이 가치관의 전도(顚倒)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전 세계 17개 선진국 1만8천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각국 응답을 평균 낸 결과는 '가족' '직업'에 이어 그다음이 '물질적 행복'이었다. '물질적 행복'을 중시하는 사회, 여러 요인으로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 사회는 디스토피아가 되기 십상이다.

유토피아가 현실에 없는 이상향이듯, 디스토피아 또한 현실에 없는 세계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는 디스토피아가 엄연한 현실이다. '지옥' 등에서 다뤄진 문제들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 시스템의 문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를 해결하는 데 노력해야 하고, 이를 선도해야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하자투성이 대선 후보들의 이전투구를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면 더 심한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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