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도덕성이란 단어를 쓰기가 쑥스럽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가 여러 번 곱씹어본다. 어느새 나도 세상 변화에 둔감한 꼰대가 된 건 아닌지 반성(?)도 해 본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처럼 "도대체 뭘 잘못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거나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의 말대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낳고 기른 용기에 존경을 표한다"고 해야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헷갈린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이다. 조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이미 사퇴한 마당에 민감한 사생활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당 선대위 대변인까지 '존경을 표하는' 논평을 내는 걸 보면서 공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변했다면 그 변화에 맞는 새로운 잣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도 있다. '정치와 공직 분야에서 도덕성 검증을 어디까지 해야 하며 도덕성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가 우선 떠오르는 문제다.
본인이 후보로 출마한 것도 아닌데, 사생활 검증 공세가 부당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선거대책위원장이 전통적 의미에서 '공적 인물'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상임선대위원장은 집권 여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지지해 줄 것을 국민에게 호소하는 위원회의 책임자라는 공적 직위이다. 아무리 상징적이라 해도 여당 대표와 동격이다. 상당한 정도의 공적 검증을 각오하고 이를 통과할 수 있는 인물이 맡아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혼외자 문제는 검증 영역이 아닌 사생활 문제라는 비판도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다. 과거 당연한 공직 결격 사유였던 이혼 경력 정도는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에서 보듯 시대에 따라 잣대도 바뀌는 법이다. 헌재가 간통죄 위헌 결정에서 국민의 '성적 도덕관념의 변화'를 내세웠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혼외자 문제와는 다른 점을 언급할 이유는 없다. 만일 뭘 잘못한 것인지 모르겠다거나 존경을 표해야 할 일이라면 앞으로 혼외자 문제는 이혼 경력과 같은 차원에서 취급할 것인지 물을 필요성이 크다.
프랑스 미테랑은 혼외자가 있어도 대통령을 했다거나, 박정희 대통령은 허리 아래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말은 본질과 상관없는 얘기다. 미국이라면 당장 대통령에서 물러났어야 할 사안이고, 허리 운운은 박 대통령의 개인적 기호였을 뿐이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는 관점을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종류의 사생활에도 관대해야 한다면, 우리 편이 아니어도, 여자가 아닌 남자여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지도 물어야 한다.
사생활을 포함한 도덕성 검증이 공적 인물 평가에 어느 정도나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도덕성 검증을 빙자한 지나친 인신공격이 불편할 때가 많다. 특히 야당 시절과 다른 이중 잣대를 꺼내 드는 여당을 목격할 때 그렇다. 현재의 여야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공직에 나서는 걸 주저하는 이유가 무자비한 도덕성 검증 공세 탓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여부를 알 수는 없어도 가족들이 결사반대한다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공직 지명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모두가 축하하는 외국의 분위기와 다른 건 분명하다.
도덕성과 능력과의 상관관계를 정밀 측정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도덕적이면서 업무에도 유능하면 금상첨화지만 도덕성과 능력 중 무엇을 우선할지, 실제로는 우리 사회가 공인의 흠결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을지가 해결 과제일 것이다. 도덕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있을 경우 능력 검증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칫 조선시대의 위선적 도덕 정치로 회귀하는 게 아닌지 우려될 정도다.
우리 편에게는 망원경을, 다른 편에게는 현미경을 들이대는 정치인들의 '내로남불' 행태가 논란을 키우는 원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권이 서로에 대한 비난 대신 진지한 자세로 이런 문제에 접근했으면 싶다. 정치는 불과 같아서 너무 멀면 얼어 죽고 너무 가까우면 타 죽는다고 한다.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실제 경험한 것으로 지나치기에는 개인적 대가가 너무 혹독하다. 우리 사회가 작은 교훈을 얻어야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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