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시인' 쇼팽(1810~1849)의 무덤은 두 개다. 하나는 프랑스 파리에 있고, 하나는 그의 조국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다.
쇼팽은 폴란드가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삼국 분할로 지도에서 사라졌던 1810년 바르샤바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인 쇼팽은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쇼팽은 16세 때 빈으로 유학을 떠나 1829년 바르샤바로 돌아왔으나 국내외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 줌의 흙을 주머니에 넣은 채 폴란드를 떠나 1831년 파리에 정착한다. 파리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프랑스가 다른 나라보다 폴란드인을 백안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쇼팽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쇼팽은 친구의 여동생을 사랑했으나, 상대 집안의 반대 등으로 결혼은 무산된다. 실연 뒤 리스트의 소개로 이혼녀 조르주 상드와 열애에 빠져 10년 가까이 사귀다 헤어진다.
소팽은 상드와 헤어진 뒤 결핵이 더 악화됐다.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누이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불러줄 것, 또 하나는 폴란드가 독립하면 심장이라도 고국에 묻어달라고도 청했다. 그만큼 쇼팽은 조국을 그리워했고 돌아가고 싶었다.
1849년 쇼팽은 숨을 거뒀다. 향년 39세였다. 쇼팽의 심장이 제거된 시신은 파리 근교에 안장됐고, 관 위에는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이 뿌려졌다.
귀향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사후였다. 쇼팽의 심장은 술병에 담겨 봉인된 채 당시 러시아 지배하의 폴란드 지역으로 숨겨 들어갔고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됐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때 이 지역을 점령한 독일군은 쇼팽이 국민적인 영웅인 점을 불편하게 여겨 그의 음악을 연주하지 못하도록 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쇼팽의 심장은 성 십자가 성당에 묻혔다.
폴란드는 바르샤바 시내에 쇼팽공원을 조성했다. 그곳에 쇼팽 동상을 제작돼 1927년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를 기념해 그해부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5년마다 열고 있다.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는 피아노 분야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지닌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2015년 제17회 대회 때는 우리나라의 조성진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에 앞서 2005년엔 임동민, 임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했으며, 올해도 이혁이 결선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