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아빠는 그냥 아빠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김지혜 그림책서점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괜찮다는데도 엄마는 기어이 곰국을 끓여 아빠 편에 보낸다고 했다. 어머님 간병 차, 딸이 서울에 와 있다는 소식은 엄마 아빠를 자꾸만 들썩이게 했다. 나는 병원 1층 로비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밖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으니, 병원 로비는 만남의 장소였다. 이른 아침이라 병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의 출입이 이어졌다. 정문은 내 열려 있었고, 제법 시린 바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겨울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바라보며, 옷을 단단히 여몄다. "지혜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빠 목소리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나는 아빠의 음색을 금세 가려낼 수 있다. 아마도 세상 모든 자식은 제 부모의 목소리를 한 번에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엄마! 아빠!"하고 부르는 내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거나, 멈춰 서는 것처럼 말이다.

아빠는 곰국 외에도 많은 것을 챙겨왔다.

"사돈 뼈 잘 붙으시라고 엄마가 밤새 끓인 거야. 겉절이도 맛 좀 보시라고 조금 싸왔고. 이건 빵집에서 방금 만든 샌드위치랑 케이크인데 커피랑 같이 먹어."

이런 수고스러운 상황들이 편하지만은 않아서 나는 자꾸만 볼멘소리를 한다.

"아빠, 병원 밥 잘 나와. 그리고 이제 이런 거 끓이지 마시라고 해. 엄마가 힘들잖아. 그냥 도로 가져가서 집에서 드시면 좋겠다."

"얘는 왜 그래. 엄마가 정성껏 끓인 건데?"

"정성껏 끓인 거니까 더 그래. 다 못 먹고 버리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든단 말이야."

냉큼 받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덜어내려고 하자, 아빠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아빠 손이 차갑다. 뜨거울 줄 알았던 커피도 다 식어 있었다.

차가운 아빠 손 위로 그해 겨울이 겹쳐졌다. 별거 아닌 걸로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는 보란 듯이 도시락을 팽개치고 나와 버렸다. '그깟 밥 한 끼 안 먹어도 돼.' 점심시간이 되자,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아빠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교문 앞으로 삐죽거리며 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핑크색 보온도시락을 들고 서 있었던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었다.

병실로 올라와 곰탕과 김치를 서늘한 창가에 올려놓고는 테이블을 펼쳤다.

"어머님, 샌드위치랑 케이크 좀 드셔보셔요. 아빠가 보내주셨어요."

나는 식은 커피를 데우려고 일어섰다.

"아버지가 참 다정하시다."

'다정하다'는 그 흔한 말에 갑자기 목이 메었다. 아빠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다정했는데. 학교 앞으로 도시락을 가져다주었을 때에도, 오늘처럼 병원 로비에서 나를 불렀을 때에도. 나는 1층 로비로 다시 내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출발했지?"

"응. 왜?"

"아니…… 그냥……고맙다고."

내가 평생 아빠에게 하지 못할 말이 있다면, '아버지'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아빠에게 나는 내내 격식을 차리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괜찮다 할 거다. 아빠는 그냥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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