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주소 이야기

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연아람 옮김/ 민음사 펴냄

여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초상화. 인터넷 갈무리

매일, 매시간 접하는 것 중 하나가 주소다. 온라인쇼핑으로 인한 택배가 대중화되면서 주소는 그 어느 때보다 현대인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더 나아가 주소는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까지 규정하는 힘을 갖게 됐다.

이 책은 이 같은 주소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 전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지역과 한국과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전 세계의 사례를 취재하고 인터뷰해 주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주소는 단순히 위치를 지정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인접한 토지도 서로 다른 행정 구역에 편입되는 순간 가치가 달라진다.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이 '레인'(lane)에 있는 건물과 비교해 절반 가격에 거래되었고, 미국에서 주소에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은 전체 주택 가격의 중앙값보다 16% 높았다.

주소는 재산 증식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같은 부동산업자들은 '센트럴파크'처럼 비싸 보이는 주소를 건물에 붙여 부동산 가치를 높이려 애썼다. 뉴욕에선 1만1천 달러(2019년 기준)만 내면 현주소를 '매력적인 주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1997년 교통 체증으로 악명 높은 '콜럼버스 서클 15번지'에 세운 건물 주소를 '센트럴파크 웨스트 1번지'로 바꾼 건 유명한 일화다.

​지금의 주소 체계가 탄생하게 된 것은 18세기 유럽에서다. 집에 번지수가 매겨지기 시작한 때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질적인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숙적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위해 병력이 필요했다. 1770년에 징집령을 내린 테레지아는 전투 가능한 남자들을 효율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집집마다 번호를 부여했다. 지역에 따라 번호판의 색깔을 구분하고 모든 번지의 아라비아숫자 앞에 번호를 의미하는 'No.'를 표기했다. 이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무려 700만 명에 달하는 젊은 병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번지의 탄생'은 조세, 부역, 반체제 인사 색출 등에만 활용되지 않았다. "계급의 구분 없이 모든 가옥에 번호를 새기는 일은 합리성과 평등이라는 계몽사상의 원칙을 한층 높였다"고 지은이는 평가했다.

또한 이 책은 '왓스리워즈'와 '구글 플러스코드' 등 디지털 주소의 등장으로 인해 변모할 주소의 미래도 점쳐본다. 493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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