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전망]지방분권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

최정암 서울지사장
최정암 서울지사장

32년째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대구시나 경상북도를 지방정부라고 부르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라고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중앙정부보다 더 밀접하게 지역민들의 생활과 연결돼 있는 행정기관을 우리는 '정부'가 아닌 '단체'라고 부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같은 운명이다.

헌법에 '지방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117조)에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물론 34년 전 우리 헌법이 개정될 당시에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지방자치에 대한 개념도 완전 무지 수준. 그러다 보니 모든 자구 하나하나가 중앙 위주였다. 지방자치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자치 업무를 담당할 시도 및 시군구를 어떻게 단체로 격하시킬 수 있었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지방민들이 감히 정부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우월 인식에서 나온 중앙집권적 결과물이다.

이렇다 보니 하위 법령들이 아무리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실질적 지방분권 수준이 정비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헌법에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명명함으로써 자치분권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지자체 및 다수 지방분권 운동가들의 바람은 헌법 조문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을 반드시 삽입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고 지방분권을 우리의 국가 질서로 규정함으로써 입법·행정과 법령 등의 국정 운용 방향을 정립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사안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에게 지방분권‧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핵심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고, 집권할 경우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이번에는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이제 1987년 9차 헌법이 개정된 지 34년이 지나는 시점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체제를 선진국 수준의 지방분권으로 전환하려면 중앙과 지방 간 입법권이 배분되어야 한다. 동시에 자치분권의 핵심 사안인 과세자치권과 세원의 지방 이양 및 지방재정의 균형화를 이루는 조치들이 따라야 한다. 이는 헌법 개정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226개 기초지방정부 중 89개가 인구 소멸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역의 근간인 지방대학도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에 처하고 있는 상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거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역민들은 지방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대선 주자들에게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불행히도 현재 양대 정당 대선 주자들이 내세운 공약들에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강화하는 공약은 찾기 어렵다. 핵심 지지층들의 관심도 '정권 재창출'과 '정권 탈환'으로만 구분돼 있다. 그렇게 한다고 지역민들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분권 개헌을 해야만 생활의 질이 나아질 단초가 제공된다.

대구는 지방분권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전국 최초로 광역과 기초 지자체 모두 지방분권 지원 조례와 분권협의회를 구성한 분권 선도 도시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한번 지방분권 개헌 논의가 불붙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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