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펑크록 스타일 빨대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당선돼 등단한 송지현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펴냈다.
첫 소설집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이후 2년 만이다. 지난해 '동해생활'이라는 에세이집을 냈고, 소설집 한 권에 여덟아홉 편의 단편이 실린다는 걸 감안하면 속도전에도 능숙한 작가다. 이번에도 표제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포함해 아홉 편이 실렸다.
'2021 현대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던 표제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부터 펼친다. 인디 밴드 활동을 하던, 업계에서 존재감이 옅은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고향에서 뜨개방을 운영하던 이모가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가게를 그에게 맡기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흐름을 종잡을 수 없다. 이쪽으로 흐르나 싶다가 저쪽으로 흐르고, 저쪽으로 가겠지 싶다가 어느 새 작가의 조련에 눈을 맡기고 있다. 이야기도 어느덧 끝나 있다. '아하, 이거 왠지 윤성희 작가 느낌이다.'
일상을 기록한 거 같다. 쉽게 읽히는 이유다. 재미있는 와중에 깨우침도 간명하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이모의 뜨개방 수세미가 판매용이었다는 걸 안 주인공에게 온 '돈오'(頓悟·갑자기 깨달음)의 순간이다.
"모든 게 팔려고 만들어지는데, 안 팔리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이왕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거, 잘 팔리는 걸 만드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능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뭐랄까, 안목이랄까 선택이랄까, 애초에 그런 게 잘못된 느낌이었다. 매번 실패하는 투자자처럼 시장성 없는 것에만 자신을 투신하는 안목. 실패하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한번 더 하는 사람."
기습적으로 튀어나오는, 연륜의 누적에서 온 문장들이다. 이어지는 단편 '손바닥으로 검지를 감싸는'도 그에 못지않다. 다만 결이 조금 다르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작품으로 보인다.

동생과 가려던 경주행에 승려가 되겠다는 외삼촌이 동승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서사다. 반야심경의 현대 버전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쩌는 방법을 알고 싶어?'가 첫 문장이라고 할 때부터 짐작은 했다. 웃음 포인트가 여러 군데서 터져 나온다. 푸석한 사과를 먹으며 이불솜을 베어먹는 맛이었다고 묘사하는 대목이나 "사람들은 대개 맛을 설명할 때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비유로 쓴다. 이를테면 오줌맛, 똥맛"이라고 부언하는 데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다.
사찰 기와에 소원을 적으며 '가내 평안'이라고 적지만 속으로는 '불로소득'을 세 번 중얼거렸다는 주인공은 '진리를 깨달은 자('비로자나불'을 지칭)라면 진실한 소원을 파악할 것'이라 말한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호머 심슨이 자주 쓰는 개그회로와 닮았다. '세븐일레븐'에 붙은 '일본산 불매' 문구를 보고 "세븐일레븐이 일본 거 아니냐"고 묻는 장면도 그렇다.
작가는 무엇보다 불편과 결핍이라 통칭되던 것들을 스스럼없이 그려내는 데 익숙하다. 시쳇말로 '콩가루 집안'이라 지칭되는 비정상적 가정사를 정상의 영역으로 데려다 놓는다. 故 박철수 감독의 1996년작 영화 '학생부군신위'와 닮은 단편 '오늘의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별세로 온 가족이 몰려들면서 불편한 상황들이 잇따른다. 오랜 기간 소식이 끊겼던 이들도 나타난다. 숨기고 싶었던 어색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공개된다. 어느 집이나 이런 사연 하나쯤은 있지 않냐는 듯 상황들을 그려낸다. 슬프다거나 애처롭다는 느낌보다 '그럴 수도 있군'에 가까운 감정이 들어찬다.

화내고 욕하는 엄마를 비중있게 모셔다놓은 '명절 전야'도 마찬가지. 가족 해체로 이어지는 과정이 집중 묘사되는 것도 아니다. 소설 막판에야 대반전이 있다는 걸 눈치 채지만 '이런 엄마도 있지, 이게 뭐 대수니'라는 메시지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저 별일 아닌 듯 흐름을 주도하는 게 송지현 작가의 장기다. 그러다보니 "힘든 거 힘을 합쳐 이겨내자"는 식의 연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은교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여성의 각성과 성취를 말하는 의기양양한 성공담과 야망심을 북돋아주는 짱짱한 임파워링 구호에서 소외된 이들의 흥망성쇠 일상사가 이 책을 채우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아홉 편의 단편 주인공들은 일관성있게 무소유의 자세가 확고하다. 물욕이 없는 게 아니라 미래지향성이 없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낭창한 이들이 등장하는 게 아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않는 캔디 같은 주인공들이다. 아무리 욕 잘하는 엄마, 화풀이하는 엄마, 이혼 혹은 사별하고 여러 남자를 만나는 엄마가 학습된 전통적 모성상을 어질러놓는다 해도 꿋꿋하다.
어쩌면 그런 삶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게 정상의 궤도인지 모른다. 오 평론가는 이를 두고 "송지현의 세계는 돌보지 않으면 무너지는, 돌보아도 또 무너지고야 마는 일상의 위태로움이 어느새 항상성을 이루게 된 곳"이라고 풀이했다. 28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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