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농담이 아니어도 충분한

권이항 지음/ 청색종이 펴냄

소설집 속 단편
소설집 속 단편 '가난한 문장에 매달린 부호의 형태에 관하여' 관련 물음표 이미지. 매일신문DB
권이항 지음 / 청색종이 펴냄
권이항 지음 / 청색종이 펴냄

권이항 작가가 첫 소설집 '농담이 아니어도 충분한'을 펴냈다. 201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농담이 아니어도 충분한 밤'으로 등단한 이후 5년 만이다. 첫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다. 이중 세 작품은 문학상과 신춘문예를 통해 존재감을 알린 작품들이다.

2019년 제11회 현진건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와 2016년 심훈문학상 당선작 '가난한 문장에 매달린 부호의 형태에 관하여'가 소설집의 선두에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단편 '모든 것은 레겐다에 있다'는 단역배우의 실종을 소재로 삼는다. 30년간 단역배우로 연기를 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미스터리 속 인물인 박신우는 메소드 연기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는다. '스텝 아웃'이라는 영화에서 종말을 맞는 마지막 지구인 같은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 한 컷으로 모든 관객을 전율하게 만들었는데, 이 장면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이 작품 이후 사람이 사라진 것이었다. 소설은 그의 종적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그의 실종을 주요하게 다룬 기사, 그리고 몸이 서서히 사라지는 화자로서의 박신우를 다각도에서 비춘다.

작가는 단역배우 박신우처럼 일상에서 두어 발짝 물러나 있는, 소외된 듯한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춘다. 지난해 KBS라디오문학관에 소개되기도 했던 단편 '가난한 문장에 매달린 부호의 형태에 관하여'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비롯한 여성삼대가, 소통의 무의미함을 실천하듯 말이 통하지 않는 무슬림 여성과 결혼한 남성이(아라비아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의 집에 머무는 언니가(농담이 아니어도 충분한 밤) 각자의 내면을 독자에게 드러낸다.

사회적 통념과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쉽잖은 이들이겠지만 이들의 내면에서 전개되는 갈등이 소설 전개를 추동한다. 긴장감으로 이어질 것 같던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인물들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작가는 화자에 빙의해 그들의 내적 갈등을 문장으로 게워낸다.

그래서인지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권이항의 소설집은 여러 번 읽을수록 곱씹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텍스트로부터 분리시켜 자기의 삶을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창석 작가도 표사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심연에 숨었다가 발톱을 드러내며 저항하는 소재와의 투쟁이라고 할 때, 권이항은 여기에 매우 부합하는 작가로 보인다"라고 썼다. 288쪽, 1만3천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