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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바이러스는 마법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수민 소설가
이수민 소설가

새로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 보고된 '오미크론'이다. 인도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변이가 발생했다.

알려진 것처럼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인체는 바이러스의 증식과 변이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빈곤과 열악한 환경으로 고통받는 곳에서 주로 변이가 나오는 까닭이다.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년간 G20 국가가 80% 이상의 백신을 독점한 반면, 저개발국에는 단지 0.6%의 백신만 제공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일하는 지인이 보낸 사진에서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현지인은 찾기 어려웠다. 마스크조차 구하기 힘든 곳에서 백신 접종은 요원해 보였다.

저개발국가들이 마주한 난제는 턱없이 모자란 백신의 수량만이 아니다. 백신을 보관할 냉동고와 운반시설도 부족한 데다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면 백신의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 백신 접종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정확하고 과학적인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것 역시 문제다.

그 와중에 반가운 기사를 읽었다. 12월 1일 자 '뉴욕타임스'는 11월 29일부터 사흘간 열린 세계보건기구 회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회의의 목적은 공평한 백신 분배와 신속한 정보 교류 등을 위해 회원국 사이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기구의 수장은 "(바이러스로 인한) 공황과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방관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참담한 현실을 언급한 뒤 "우리의 목표는 팬데믹의 종식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합의는 끝내 도출되지 못했다. 미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프리카인들의 몸에서 생긴 변이가 전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인류는 국경에 갇힌 정책을 고수했다.

회의가 끝난 뒤 선진국 정부들은 추가접종부터 서둘렀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곧 강화될 것이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또다시 백신과 백신 사이 어딘가로 수렴해간다. 정작 변이 바이러스의 인큐베이터로 전락한 자들은 까맣게 잊힌 채.

바이러스는 경고한다. 국가를 단위로 경쟁적인 백신 접종의 경주만 반복해서는 전 세계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낼 수 없다고. 뒤처져 낙오한 자들까지 부축해 함께 결승선을 넘어야 팬데믹을 종식할 수 있다고.

바이러스는 마법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알고 있으며, 이제는 실천을 위해 힘을 모을 때다. 인류에게 결핍된 것은 백신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연대와 협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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