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엄마의 기도

박채현 동화작가

박채현 동화작가
박채현 동화작가

겨울 볕이 제법 따스한 날 팔공산 갓바위를 찾았다. 불자가 아니어도 야외로 나가 걷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 좋은 곳이다.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오르는데, 앞에 허리 고부라진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오른다. 숨을 몰아쉬며 쉬었다가 다시 오르기를 되풀이한다. 노인을 지나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끝이 없을 것같던 계단 끝이 하늘과 맞닿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에 가부좌를 튼 돌부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아주머니는 묵주를 돌리며 절을 하고 한 아저씨는 부처님을 맞보며 가부좌 틀고 눈을 감았다. 어떤 이는 바위를 부둥켜안고 묵상에 들었다. 바위틈에는 동전들이 간절하게 붙어있다.

계단을 기다시피 오르던 노인도 드디어 도착했다.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쌈짓돈을 털어 봉양하고, 초에 불을 붙이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몸은 늙었어도 가슴에 품은 소원은 낡지 않았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노인의 몸짓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나는 소원을 비는 것도 잊고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에 빠져든다. 저토록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내 기억 속에도 있다. 엄마는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무릎을 꿇었다. 잠든 자식의 머리맡을 옮겨 다니며 기도를 했는데, 막내였던 내 차례가 되면 날이 훤히 밝아 오곤 했다. 나는 자는 척 기도를 엿들었다. 눈물이 반쯤 섞인 목소리는 늘 같은 말을 했다.

"건강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칭찬받는 아이가 되게 해주시고…."

콩나물시루에 물이 빠지듯 흘려들은 기도였다. 신기하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기도는 되살아났다. 맡은 일이 버겁거나 억울한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기도 말이 생각났다. 엄마의 기도는 엇나가지 못하게 쳐 놓은 테두리 같았다. 그 안에서 이겨내려고 애쓰다 보면 풀어지고 해결될 때가 많았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세월에 고부라지는 엄마의 등을 보면 자식을 위해 이제 더 내어줄 것이 없어 보이는데,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 마디로 나를 꿇게 한다. 탈 없이 지내는 것이 내 능력인 줄 알았더니, 엄마의 기원 덕택이 있었구나 싶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다.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다.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언행을 함부로 할 리 없다. 일을 아무렇게나 해놓고 지성만 들일 리도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하늘에 비는 마음에는 겸손함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기도의 본질은 몸과 마음을 한곳에 모아 소원을 이루어내려는 일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자기 안에서 길을 찾고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도를 마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간다. 노인의 걸음마다 통통 울리는 목탁 소리가 걱정하지 말고 가서 열심히 살라 한다. 속을 다 털어놓아 그런지 어눌했던 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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