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완연한 양극화의 시대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노동 현장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두 진영 사이에 벽을 친다. 전형(銓衡)이 이뤄지는 곳에선 이른바 금수저와 흙수저 출신이 서로를 향해 눈을 흘긴다.
집주인과 세입자도 자신의 걱정만 앞세운다. 서울과 '비(非)서울' 역시 극단적인 처지에 불만을 토로할 뿐 상생을 위한 움직임은 없다.
수많은 외부의 침략을 잘 이겨낸 우리 공동체가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5년 전 웃음 치료로 유명한 행복 전문가 이시형(87) 박사를 인터뷰할 때다. '다음 시대를 이끌어 갈 후배들에게 어떤 기대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우리 사회가 요동치는 과정에서 신분 상승으로 대표되는 '출세'의 가치가 예로부터 이어져 온 다양한 정신적 유산을 압도했고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세대에게는 '더불어 사는 삶'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자신의 자녀에게조차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물려주는 바람에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가 더욱 황폐해졌다는 분석이다.
당시 이 박사는 1970년대 초반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한 가정을 예로 들었다.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사글세 집에서 집주인 할머니의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애 좀 그만 울려라!'는 구박을 견디며 성공을 꿈꿨지만 현실은 팍팍하기만 했다.
자신의 '출신'을 한탄하던 가장은 '국민학교'에 입학한 자녀에게 "너는 딴생각 말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쳤고 그렇게 배우고 성장한 세대의 나이가 벌써 쉰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언제 어른들 눈에 띌지 모르니 늘 처신을 삼가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주문은 익명성이 보편화된 공간에서 잔소리에 불과했고 내 성공이 제1목표인 삶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배려 그리고 공동선은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단어가 됐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분석한 책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에서 전 세계 26개 문명의 역사를 한마디로 '도전(挑戰)과 응전(應戰)의 과정'으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개인이나 조직, 국가는 끊임없이 문제에 봉착하는데 외부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했던 민족이나 문명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했던 민족과 문명은 소멸했다. 도전이나 응전이 없었던 민족과 문명도 안일에 빠져 사라져 버렸다'는 결론을 맺었다.
이제 우리도 사회 전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에 응전하고 승리해야 한다. 소멸되지 않으려면.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별로 승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통상 이런 전쟁에선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 특히 정치인들이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우리 형편은 아쉽기만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권의 편협한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태도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들을 여러 진영으로 쪼개고 싸우도록 조장하기도 한다.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까지 채 90일도 남지 않았다. 고속·압축 성장의 그늘을 치유할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아보자. 파편화된 국민들의 희망을 묶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하는 이에게 시선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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