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정신(경북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씨 모친 故 서영선 씨

새벽에 어시장 물고기 사서 제주 동문시장에서 파셨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저를 육지 대학에 보내주셨지요

1996년 여름,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 인근에서 한복을 입은 어머니 서영선(가운데) 씨와 김정신(뒷줄 오른쪽 세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1996년 여름,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 인근에서 한복을 입은 어머니 서영선(가운데) 씨와 김정신(뒷줄 오른쪽 세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어머니!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그쪽 나라는 평안하십니까? 불러도 불러봐도 보고 싶은 내 어머니! 당신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셨지만, 저희에게는 위대한 산이요 바다였습니다. 7남매를 키우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지요.

어머니는 제주도 산자락에서 태어나 불행한 4·3 사건을 겪으며 두 어머님(필자에게는 친할머니· 외할머니)을 다 잃고 남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통시(제주도의 재래식 화장실. 돼지가 살던 곳)에 숨어 살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셨다지요.

저는 평소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음식은 무엇이고 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셨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 분들을 돌아볼 여유도 못 가진 저의 불찰이지요. 어머니! 이제 소리 내어 불러봅니다. 80세까지 일을 하시다가 그만두신 후 마음 편해지려는 순간, 저 너머로 멀리 가신 어머니! 이제 한라산 중턱에 고이 잠드신 어머니가 못내 그립습니다.

새벽 4시쯤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나가서 저녁 8시쯤 돌아오시던 어머니, 어머니 몸에서 풍기던 그 생선 비린내! 그게 지금의 저희를 있게 한 삶의 원동력임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 혼자 식사한 후 저녁 7~8시쯤이면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새벽 2~3시쯤이면 일어나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그 힘은 전날 일하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도 새벽마다 창문을 두드리며 딸을 깨워주시던 어머니 덕분이지요.

그렇게 저는 일어나서 날이 밝기까지, 그리고 학교에 갈 때까지 3년을 한결같이 공부했었지요. 공부할 때 배가 고플까 봐 책상 위에 늘 고구마나 감자 찐 것을 놓아두시곤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렇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셨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이 딸을 육지에 있는 대학에 보내주셨습니다. 방학이 되어 제주도에 가서 살다가 개강할 즈음이면, 다시 대구로 오기 위해 제주시 연안부두 앞까지 전송 나와 언니와 함께 손 흔들어주시던 어머니!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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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25일 김정신(오른쪽) 씨의 박사학위 졸업식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찍은 서영선 씨 모습. 가족제공.
2000년 8월 25일 김정신(오른쪽) 씨의 박사학위 졸업식을 축하하며 기념사진을 찍은 서영선 씨 모습. 가족제공.

대학을 마치고 고등학교 선생으로 지내다가 교편을 그만두고 공부를 했지만, 대학원 시험에 낙방하여 서울로, 일본으로, 대구로, 제주로 떠돌아다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일하시던 곳에 가보았지요. 새벽 어시장에 가서 물고기를 사서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내다 팔던 때, 어머니는 저를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신 건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저를 바로잡기 위함인지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그 어려움 속에서 공부를 시킨 자식의 모습이 안타까웠겠지요. 그런 저를 박사학위 받기까지 뒷바라지하시면서 자신은 외출복 한 벌 없이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반생을 보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지금의 저희에게는 산이요 바다 그 자체임을 고백합니다.

못 배운 것이 한(限)이 되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출가시켰으며, 이 눈치 없는 셋째 딸을 공부시키느라 애 많이 쓰셨지요. 박사학위 받던 날, 어머니께서 흘리시는 눈물인지 비까지 내리는 대학교 강당을 뒷배경 삼아 몇 장의 사진 속에 남고 어머니는 훌훌 가셨지요. 밥 한 끼 제대로 못 사 드리고 고맙다는 인사 한번 제대로 못 올린 이 딸을 용서해 주세요. 온갖 집안일과 친척 일을 도맡아 이끌어가시던 여장부로서의 어머니의 역사를 좀 더 상세히 듣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어머니! 인제 와서 이 딸은 손 모아 빕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히, 평안히 쉬십시오. 오늘 아침 한라산 중허리에서 어머니의 숨소리가 전해오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기리는 시 한 수 올립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라고 부를 당신도 지상에는 없어요

칠 남매를 낳고

온갖 아픔 참으며

바람 같은 남편을 만나

바람 잘 날 없었던 그 날들을 다 이겨내신 당신

"남편 하나 잘 만나야 한다"

우리에게 평생 단 하나의 노래를 불렀던 당신

제주시 동문시장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1년 365일, 80세까지 일하신 당신

그러나 어머니,

당신의 영정 사진 앞에서도, 장례식에서도

절 한 번 올리지 못했던 이 딸을 용서하세요

이제는 한라산 중허리에 누우시고

아직도 우리를 보시는 당신

어머니,

당신이 건너가신 그 나라는 평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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