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지 돈 아니라고”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2013년 2월 개봉한 영화 '신세계'는 폭력 조직 두목 석 회장(배우 이경영) 사망 소식에 중국 출장 중이던 서열 2위 정청(배우 황정민)이 귀국하면서 시작한다.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 승용차 안에서 정청은 마중 나온 자신의 '브라더'(의형제) 이자성(배우 이정재)에게 중국에서 구입한 '짝퉁' 선글라스를 명품이라며 자랑한다. 그리고 "제수씨 갖다 줘"라며 '짝퉁' 손목시계를 명품인 양 '브라더'에게 건넨다. '브라더'의 반응은 싸늘하다.

'짝퉁'임을 들킨 정청은 "티 나냐?"라면서, 자신의 '짝퉁' 선글라스는 '어떻게 보이느냐?'고 묻는다. 이자성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좀 덜하네, 그래"라고 답한다. 화가 난 정청은 승용차 앞자리에 앉아 있는 부하 조직원을 때리며 "티 안 난다며? 안 난다며? 자세히 좀 보라니까, XXX이 지 돈 아니라고!"라며 욕을 퍼붓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6일 정부의 소상공인 손실 보상 지원이 '쥐꼬리'라고 비판하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해 "50조 원 소상공인 지원을 예산에 편성하기 위해 당장 합의하자"고 말했다. 국회가 사상 최대인 607조 7천억 원의 내년도 예산을 통과시킨 지 3일 만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얘기를 꺼낸 것이다. 여당은 기다렸다는 듯 추경 검토를 공식화했다. 이 후보는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는다고 해서 특별히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청와대는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내년 세출 예산의 73%를 상반기에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내년도 초슈퍼급 예산 607조 7천억 원에서 기금을 뺀 일반·특별회계 597조 7천억 원 중 363조 5천억 원, 전체 예산 중 거의 4분의 3을 상반기에 다 쓰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자영업자·소상공인 50조 지원' 공약을 두 배로 키우자는 주장이 나왔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 100조 원 정도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곧바로 "환영"이라고 받았다. 10일에도 두 후보 모두 추경을 촉구했다. 무슨 포커 판도 아니고 "받고 더블"에 "콜"에 참 가관이다.

여야 간 '돈 뿌리기 경쟁'이 격화된 것은 '돈을 푸는 쪽'이 '아끼는 쪽'보다 지지율 제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을 풀어 지난해 총선 때 재미를 본 정부 여당은 계속 그 재미를 보고 싶어 하고, 야당은 반대했다가 독박 쓰기 싫다는 것이다. 나랏빚이 늘든, 국가 신용도가 위협받든, 청년 세대 등허리가 휘든 말든 '알 바 아니다'는 거다. 실제로 그들 임기 안에는 문제없을 테니 신경 안 쓰겠다는 발상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 400조 5천억 원이던 예산은 5년 만에 607조 7천억 원으로 51.7% 증가했다. 국가채무는 5년 전 660조 2천억 원에서 내년 1천64조 4천억 원으로 61.2%(404조 2천억 원)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에서 50%로 급증해 국가 신용등급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본예산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50조 원, 100조 원을 추가 편성하자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30∼2060년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0.8%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35개 선진국 중 향후 5년간 경제 규모 대비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한국이 가장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돈 막 풀겠다는 여야, 특히 정부 여당에 국민들은 표를 줄 게 아니라 욕을 퍼부어야 한다. "XXX들이 지 돈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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