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먹보와 털보’, 김태호 PD의 새로운 출사표

넷플릭스 타고 드라마, 영화에 이어 K예능도 가능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의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최근 MBC '놀면 뭐하니?'의 김태호 PD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먹보와 털보'를 선보였다. 과연 '먹보와 털보'는 김태호 PD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프로그램일까. 그리고 그의 이 첫 발은 K예능으로도 나아갈 수 있을까.

◆김태호 PD의 새로운 출사표

"넷플릭스 포에버! 하이 베를린, 하이 도쿄, 하이 캘리포니아, 아임 히어, 홍철 노, 엘리베이터 가이, BTS 오마주 가이. 잇츠 미! 나이스 투 밋유."

노홍철의 난데없고 근본없는 영어 소개가 특유의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들려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에 임하는 노홍철의 자세가 엿보인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시도하는 첫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그의 흥분과 기대가 묻어난다. 전 세계인들이 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등장했던 '엘리베이터 가이'를 앞세우고, 월드스타 BTS를 슬쩍 끌어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첫 도전작인 '먹보와 털보'는 바로 그 점 때문에 국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로 독보적인 MBC 예능의 기둥을 세웠던 스타 예능 PD. 예능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가 공감대를 얻을 정도로, 하나의 명작 콘텐츠로서의 완성도까지 추구했던 김태호 PD다. 그러니 오래도록 몸담았던 지상파 플랫폼을 벗어나 넷플릭스라는 대양에 몸을 담그는 '먹보와 털보'에 대한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BMW 오토바이를 각각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풍광과 먹거리를 즐기는 '먹보와 털보'의 주인공은 비와 노홍철. 평소 몸 관리를 위해 하루 한 끼를 먹되 최고의 음식을 챙겨먹는 비가 '먹보' 역할을, 넷플릭스를 위해 인도의 요기처럼 수염을 길게 길렀다가 광고 제안으로 자른 후 방송을 시작한 노홍철이 '털보' 역할을 맡았다.

출연자 구성으로 보면 두 사람의 역할과 영역은 분명하다. 비가 음식을 만들고 또 핫플레이스의 음식을 맛보는 먹방, 쿡방을 맡는다면 노홍철은 두 사람이 보내는 시간들 속에 빈틈없는 목소리를 채워넣고 때론 자극적인 맛을 더해주는 예능을 맡았다.

첫 번째 여행지인 제주에서 두 사람이 라이더가 되어 달리며 만끽하는 풍광은 눈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고, 끝없이 맛있는 음식을 챙겨먹는 모습에서는 절로 식욕이 당긴다. 제주를 찾아간 김에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를 초대해 함께 하는 저녁식사 시간은, 비 내리는 바깥 풍경과 훈훈하기 이를 데 없는 요리 광경이 어우러지며, 솔직하기 이를 데 없는 노홍철과 이효리의 과감한 토크가 강도가 다른 넷플릭스 예능을 실감케 한다.

여기에 김태호 PD여서 가능했을 힙한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된 과감한 자막부터 아티스틱한 영상 연출까지 보는 재미가 있는 톤 앤 매너를 구성한다. 자극적이진 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먹보와 털보'는 비와 노홍철이 콘셉트로 '멍 때리는' 걸 내세운 것처럼 마치 '불멍', '물멍'하는 묘한 중독성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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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와의 조화는…

하지만 이런 편안함은 어딘지 다소 자극적인 19금 콘텐츠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넷플릭스의 드라마나 예능,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자극적인 소재나 수위를 보여주면서도 질적 완성도가 높은 특징으로 이른바 '어른들의 콘텐츠 플랫폼'의 이미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예능 시리즈로 일찍이 시도했던 '유병재 B의 농담', '유병재:블랙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같은 18금 스탠드업 코미디가 어떤 면에서는 넷플릭스와 어울리는 면이 있어 보인다.

특히 18금 스탠드업 코미디는 해외에서는 하나의 인기 장르로 각광받고 있으며, 넷플릭스 예능 중 가장 두드러진 콘텐츠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먹보와 털보'같은 12세 예능 프로그램, 그것도 우리가 지상파나 케이블에서 자주 봐왔던 여행, 먹방류의 예능이 넷플릭스에 먹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는 19금 같은 성인 콘텐츠만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들로까지 저변을 넓히려는 노력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전체 시청가능한 가족콘텐츠에 강점을 보이는 디즈니플러스 같은 강력한 OTT 경쟁자의 영향이 적지 않아 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그런 점에서 '먹보와 털보'는 온 가족이 보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서의 강점을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의 한국 순위에서도 '나는 솔로'같은 다소 자극적인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 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서 가족 콘텐츠가 마주하는 장벽이 낮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다양한 장르를 아울러 선보이려는 것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변하지 않는 전략이지만, 이미 다양한 장르들을 통해 충분한 교집합이 생긴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웃음과 재미의 정서가 여전히 국가와 문화권별로 다른 예능의 영역은 '블록버스터'가 쉽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 서구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그들 문화권에서는 빵빵 터지지만, 우리에게는 그만한 감흥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예능에 대한 저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기대되는 김태호 PD의 OTT도전

최근 서비스를 시작한 '신세계로부터'는 국내 예능의 색깔로 글로벌을 타진하며 넷플릭스에 첫 출사표를 던져온 장혁재, 조효진 사단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조효진 PD는 '런닝맨'을 최초 시도해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킨 스타 예능PD로 '범인은 바로 너!'로 넷플릭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시즌3까지 마무리한 조효진 PD가 새롭게 내놓은 프로그램이 바로 '신세계로부터'다. 그간 게임 예능으로 일가를 이룬 조효진 PD는 이번 '신세계로부터'를 통해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게임 공간으로 활용하는 과감함을 선보였다. 거제 외도 보타니아라는 실제 공간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곳을 마치 가상의 게임 공간처럼 구성해 놓음으로써 10일 동안 펼쳐지는 출연자들의 두뇌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냈다.

이처럼 게임 예능은 이미 '런닝맨'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여전히 인기 있는 예능 장르다. 그래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도 어울리는 면이 있다. 또 앞으로 넷플릭스에서의 서비스가 예정된 '솔로지옥'처럼 마치 '투핫!'같은 자극적인 해외의 연애매칭 프로그램을 한국화한 프로그램도 분명 이 플랫폼과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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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먹보와 털보'의 제작진과 출연진. 넷플릭스 제공

그런 점에서 보면 스케일도 커지고 연출의 완성도도 높아졌지만, 너무 우리에게 익숙한 여행과 먹방을 주 콘셉트로 삼는 '먹보와 털보'의 도전은 다소 약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물론 편안하게 '멍상'하듯이 보기에 '먹보와 털보'는 충분한 '시간 순삭'의 몰입감을 주는 힘이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기보다, MBC를 떠나는 김태호 PD의 고별 헌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해 마음껏 바람을 맞고 달려가는 비와 노홍철의 모습에서 그간 지상파에 얽매여 있던 김태호 PD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느껴진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이 첫 발이 있어 향후 김태호 PD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그는 과연 어떤 도전을 통해 또 다른 레전드를 만들어낼까. 지상파 시절 아무도 내딛지 않았던 길에 도전해 '무한도전'같은 레전드 예능을 만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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