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

김영필 지음/ 울력 펴냄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모습.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모습.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조선의 서원과 고택의 공간을 주제로 인간의 욕망을 성찰하고 있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욕망이 공간을 짓고 공간이 욕망을 잉태한다. 공간이 인간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조선의 성리학적 공간인 서원도 욕망을 온전히 걸러낼 수 있는 수행공간은 아니다.

욕망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원초적 본능이다. '선/악'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통제하기에는 사실 인간의 욕망은 너무 강하다. 그 욕망은 또한 권력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노트르담 성당이 신의 절대권위가 수직적으로 공간화된 곳이라면, 베르사유 궁전은 인간의 절대 권력이 수평적으로 공간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모두 3부로 된 책에서 도입에 해당하는 제1부는 '공간과 욕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그 어느 책보다 탁월하게 공간에 대한 새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견해들을 피력하면서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이 된다.

제2부는 이 여행의 출발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곳의 서원에다 심곡서원, 월봉서원을 둘러본다. 그러나 단순히 이 서원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살피고 소개하는 게 아니라 이 공간들이 지닌 의미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성찰하고 있다.

무성서원에서는 그곳의 민주적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읽어내고, 심곡서원에서는 조광조의 개혁정치를 본다. 월봉서원에서는 퇴계와 월봉의 관계를 통해 현대적 의미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대화 윤리를 찾아내고, 중국의 폐쇄적인 사합원 구조를 담은 옥천서원에서는 조선시대 신분차별 제도의 부조리까지 더불어 본다. 병산서원에서는 우리 건축물의 미학적 의미를 차경(差景)의 미학에서 찾는다.

제3부는 고택이 지닌 공간적 의미를 들여다본다. 남명 조식 선생의 산천재에서는 자유로운 노마드의 삶을 보고, 송시열의 남간정사에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정약용과 약전을 통해서는 권력의 버림을 받았지만 유배지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다. 두들마을에서는 '음식디미방'을 남긴 장계향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요리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처럼 저자는 서원과 고택은 조선의 공간 정치를 성찰하는 거울로 규정하면서, 그 거울에 비친 그 시대의 욕망과 권력의 민낯을 들여다봄으로써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가져야 하는지 곰곰이 곱씹게 한다. 책은 2021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282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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