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북경에서 3개월간 일했다. 필리핀에서의 근무를 마친 뒤였다. 하필 마닐라의 동네 세탁소가 휴업하는 바람에 변변한 외투도 없이 초겨울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북방의 추위는 집안까지 매섭게 파고들었다. 쌓여가는 일회용 도시락만큼 외로움도 커졌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은 책장을 넘길 때였다. 매일 밤 재미교포 작가 이창래의 소설 'The Surrendered'(생존자)를 펼쳤다. 익숙한 언어로 직조된 담요를 덮고 누우면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인물들이 찾아와 속삭였다. 새벽의 입김 속에서 섬세한 교감을 나누는 사이 고독으로부터 조금씩 숨통이 틔는 걸 느꼈다.
그 무렵 영어로 적힌 작은 책자가 눈에 띄었다. 산리툰의 작은 서점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이창래 작가가 참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믿기 어려웠다. 소설이 결말로 치달을 무렵, 글의 주인은 정말 눈앞에 앉아 있었다.
작가의 말투는 차분하고 세련된 문체와 닮아 있었다. 독자와의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작품에 관한 논의도 깊어졌다. 뭉근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상상 속에 가둬둔 작가의 인물을 하나둘 활자 밖으로 꺼내 놓았다. 내 머릿속에서 빚어진 인물도 청중 앞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물음표를 머리에 얹은 소녀가 있는가 하면, 느낌표를 짚고 선 노인도 있었다. 그들은 작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서로의 외연을 탐색하며 어느새 독자적인 생명력을 내뿜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짧은 근무를 마치고 북경을 떠났다. 그날의 대화는 내 안의 무언가를 완전히 바꿔놓은 게 분명했다. 몸 안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답답함에 무작정 제주도로 향했다. 섬 이곳저곳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일도 하기 싫었다. 집 안에 머물 땐 턱을 괴고 계단에 앉았다. 눈이 쌓여 발이 묶인 뒤로는 계단에 기댄 시간이 길어졌고, 북경에서의 경험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칼바람이 불수록 기억은 더 생생히 뇌리를 파고들었다.
언제부턴가 펜과 종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소리가 점점 흐릿한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걸 느꼈다. 이미지는 다시 선명한 글자로 환원되었고, 소설 한 편이 완성되었다. 새벽까지 글을 썼다. 작가라는 직업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저 새로운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그 방식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에피퍼니'(Epiphany)라는 단어가 있다. 종교적인 기원을 갖는 말인데, 문학에서는 등장인물이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통찰에 이르는 순간을 일컫는다.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변모한 사건과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자각을 갖게 된 순간이 내 삶에서는 에피퍼니가 아닌가 싶다.
거창하진 않다. 나는 대단한 영웅이나 사상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 순간을 경험한 뒤 나는 달라졌다. 아주 느리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며, 이미지와 활자의 변주 속에 담을 수 있는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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