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는 너무 은근해서 알아채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애매하고 모호해서 잘 설명할 수도 없고, 명확하지 않아서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하기도 어렵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구별하기도 어렵고,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도 않는다. 곳곳에 흥미로운 요소들이 숨어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전혀 노골적이지 않아 눈에 띄지도 않았다. 모호하고 절제된 얼굴, 숨겨져 있다가 살짝 드러내는 행위, 분명하지 않은 태도가 영국인의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고 미세한 단서들이 섬세하고 민감한 그들의 속마음을 설명한다. 모르면 결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영국인의 행동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뒷마당은 주인만의 개인적인 공간이고, 앞마당은 예쁘게 가꿔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꽃을 가꿀 때만 앞마당에 나가는데, 말이 적고 비사교적인 영국인과의 '사교'는 그때만 가능하다. 말을 건넬 수 있고, 대개 날씨와 정원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것까지 정해져 있는 게 신기하다.
영국의 옷가게에는 '예쁘고 멋진' 옷이 없다. 튀지 않고 적당히 어우러지는 옷을 입기 때문이다. 친구 스텔라가 친구들과 함께 우크렐레를 연습하는 날은 마침 누군가의 생일이었다. 모두 퇴근 후에 갈아입고 왔다는데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은 배려가 정말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전원을 바라보면 감탄하게 된다. 스텔라가 먼저 "뷰티플!"이라고 말하면, 나도 "뷰티플!"하게 된다. 그가 "뷰티플!"이라고 하는데 내가 만약 "나이스!"라고 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다. 경치가 좋기는 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거다. 그게 그거 같은 미묘한 차이다.
영화 속에서 한 여인이 몹시 아팠다. 괜찮은지 묻는 이에게 "우유 좀 갖다 줄래요?"라고 부탁했다. 얼굴을 파묻고 홀로 조용히 울기 위한 절제되고 정제된 표현인 거다. 영국인은 어릴 적부터 받은 교육대로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의견이나 감정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슬쩍 표정에 담아 내보이며, 아주 미묘한 말투로 넌지시 전할 뿐이다.
자선상점에서 옷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계급이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나이든 여자들이다. 친구 글로리아가 입고 온 자켓을 가리키며 "옥스팜에서 4파운드밖에 안 줬어!"라고 했는데, 그런 얘기는 계급에 신경 쓰지 않는 높은 계급의 여자들만 한다. 하류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거기서 물건을 사는 것은 '절박한 필요' 때문이지, '칭찬을 받기 위해서나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은근하게 계급이 드러난다.

영국인은 펍에 가면 주인이나 직원에게 술 한 잔을 사주기도 하는데, 돈과 관련된 말은 잘 하지 않으므로 '산다'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미국인이 바에서 "제가 한잔 사드려도 될까요?"를 "Let me buy you a drink." 혹은 "I'll buy you a drink."라고 말하는 것과 비교된다. 말속에 '공손한 평등주의'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들어있다.
"시를 어떻게 읽느냐?"는 질문에 "읽을 바에야 좀 더 세심하게 읽어보면 어떤가?"라는 조언을 읽은 적이 있다. 영국에 살면서 수많은 차이들과 마주쳤다. 다른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마음읽기가 필요하다. 영국인의 말, 표정, 행동, 태도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영국인은 마치 오래된 숲의 자욱한 안개 속을 뛰지 않고 걷는 사람들 같다. 때로는 수면 아래 두 다리가 보이지 않는 우아한 백조 같기도 하고, 긴 드레스를 입은 성숙하고 세련된 할머니 같기도 하다. 그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방식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섞이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들만의 이상하고 놀라운 암호를 만들어놓은 것 같다. 나는 영국을 잘 모른다. 이미 말한 대로, 너무 복잡하고 미묘해서 판독하기가 어렵다.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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