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윤태순 씨 부친 故 윤명구 씨

사진 속에 아직도 멋진 청년으로 웃고 계시는데 이젠 볼 수 없네요

윤명구(뒷줄 왼쪽)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윤명구(뒷줄 왼쪽)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하늘엔 별비가 내리고 제 마음속에는 까만 그리움이 내려앉습니다. 아버지 계시는 그 나라에는 코로나도, 맹추위도, 서로를 헐뜯는 시기와 질투도 없는 곳이겠지요?

아버지는 오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는 봄바람에 하얀 도포 자락 펄럭이면서 유유히 가셨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시던 어메 곁으로 가신 겁니다. 아 나의 아버지여...

저에게는 마지막 인사 한마디도 없이 가 버리신 아버지.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세월이 지날수록 더 큰 그리움으로 다가오네요. 어제는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봤습니다.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큰오빠가 저에게 넘겨주셨지요. 아마도 막내인 제가 아버지 품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았던가 봅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아직도 멋진 청년으로 웃고 계시는데 제 곁에 아버지는 계시질 않네요.

그 시대에 정말 귀했던 까만 선글라스에 중절모까지 쓰신 아버지는 세기에 보기 드문 멋쟁이셨답니다. 특히 아버지의 시원시원한 필체는 대학을 나온 두 오빠도 혀를 내 두를 정도였지요. 사 남매 중 인물이 제일 못한 저를 동네 사람들이 모과 덩어리라고 놀리셔도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 집 복덩이라며 애지중지해 주셨답니다. 운동을 잘했던 제가 대회에 나갈 때면 열 일을 제치고 오셔서 응원해 주셨고, 제가 보내 드린 동인지는 책 모서리가 닳을 정도로 읽으시며 항상 머리맡 앉은뱅이 책상 위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윤명구(두번째 줄 왼쪽 두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윤명구(두번째 줄 왼쪽 두번째)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을 울릉도로 시집을 보내 놓고 늘 가슴 졸이시던 아버지. 외손자들이 아파서 나올 때마다 구급차를 대절 내서 부둣가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시며 애간장을 녹여 내시곤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몸으로 보여주신 애틋한 사랑을 먹고 자란 손자들도 이제는 사회의 일꾼으로 든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고, 아버지의 꼿꼿함을 보고 자란 사 남매는 아버지께서 몸소 보여주신 삶처럼 열심히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가슴 가득 사랑으로 채워주심은 험난한 세상을 좀 더 자신 있게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뜻인 줄로 압니다.

술을 좋아하시고, 친구는 더 좋아하시고, 자식 사랑이 남다르셨던 내 아버지. 오지랖이 넓어서 동네 궂은일은 혼자서 도맡아 하시며 주위 분들에게 칭송을 받으셨던 분이셨지요. 아버지 덕에 지금도 고향에 가면 제가 윤, 명자 구자 딸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신 분들이 계신답니다. 평생을 금융업에 몸담으시면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던 따스함을 그분들도 잊지 않은 듯합니다. 아버지의 딸이라는 게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가 잘 살아주신 덕분에 저도 잘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이 그립네요.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말 이제는 해 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그 모습을 본받아 열심히 당당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힘겨운 코로나 시대지만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청빈함으로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백 강아지라고 놀리시던 흰머리 공주님 엄마는 저희가 잘 보살펴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저희들 걱정이랑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마음 놓고 편안하게 쉬십시오.

2021년 12월에 포항에서 막내딸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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