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몽유

노정완 지음/ 강출판사 펴냄

대구 수성구 욱수동 망월지에서 새끼 두꺼비가 인근 사찰 불광사를 거쳐 서식지인 욱수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수성구 욱수동 망월지에서 새끼 두꺼비가 인근 사찰 불광사를 거쳐 서식지인 욱수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노정완 지음 / 강출판사 펴냄
노정완 지음 / 강출판사 펴냄

노정완 작가가 두 번째 소설집 '몽유'를 펴냈다. 작정한 듯 지난 세월 묵혀둔 작품들을 한데 묶어내고 있다. 199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서 '꿈꾸는 환절기'로, 2002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중편소설 '떠도는 늪'으로 당선된 바 있지만 작가는 지난달에야 첫 소설집 '용들의 시간'을 내놓은 바 있다. 등단 22년 만이었다.

소설집 '몽유'는 제목부터 중의적이다. 꿈에서 노니는 것(夢遊)일 수도, 어리석은 것(蒙幼)일 수도 있다. 작가는 명확하게 답해주지 않는다. 소설집 들머리에 있는 작품이면서 표제작인 '몽유'를 읽어간다. 친오빠의 성폭력에 대한 주인공의 뒤늦은 환멸을 다룬다.

주인공 경미는 연년생 오빠만 편애하는 엄마에게서 희생을 강요당하며 자란다. 나이가 들어도 오빠의 수발을 드는 건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처럼 비친다. 그런 생활 속에서 오빠의 성폭력은 은근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경미의 친구에게도 뻗친 마수는 인간적 관계, 가족에 대한 근원적 의심을 갖게 만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울타리인 가족이 외려 강한 폭력으로 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뒤를 잇는 단편들도 동일한 궤에 올라 나간다. '이걸 과연 가족이라고 불러야 하나'라는 작가의 의구심이 이야기로 재현돼 배턴을 이어가는 전개다. 꿈에라도 있어선 안될, 불편할 상황들의 연속이다. 악몽에 가깝다.

자유롭지 못한 성(性)의 문제로 수렴돼 가는 이야기는 단편 '보늬'에서도 펼쳐진다. 까마귀떼가 배가 터져 죽은 두꺼비들을 노리는 이미지로 시작하는 작품은 가족같지 않은 가족의 일면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밤 깎는 주부이자 주인공인 은조에게 남편은 정기적으로 몸을 유린하는 존재다. 악취가 가득한 단칸방, 부엌도 일체형이라 도무지 정상적인 집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남편은 은조에게 부부관계를 강요한다. 초등학생 고학년 아들 성수가 함께 있든 말든이다. 까마귀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배를 부풀리다 죽어버리는 두꺼비의 모습이 은조의 모습과 겹친다. 이쯤되면 '몽유'는 기분좋은 몽환적 영역에서 맴돌지 않는다.

김원우 소설가는 발문에서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불운과 씨름하며, 아주 조악한 환경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며 "적어도 과장스러운 표현이 한 움큼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노정완의 소설은 단연 현실주의의 기상을 떨치고 있는데, 결코 과찬이 아니다"라고 상찬했다. 28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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