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밥 먹었잖아" 점심을 먹자마자 밥그릇을 긁어댄다. 더 내놓으라는 신호다. 못 본 채를 하니 그릇을 냅다 발로찬다. 오늘도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질 기세다. 밤에는 잠을 못 이루고 집안 곳곳을 헤매고 다닌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백태 낀 눈으로 허공만 응시할 뿐이다. 사람 나이 87살. 14살 요크셔테리어 미니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됐다. 미니는 작년 여름 반려견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을 판정받았다.
◆반려견 치매, 어떤 증상을 보일까?
대구에 사는 김서정 씨가 미니의 행동을 이상하다고 느낀 건 작년 여름이다. 미니는 사료를 먹다가 갑자기 주변을 돌기 시작했고 미니의 입에서는 먹던 사료가 한 알씩 떨어졌다. 이내 미니는 대소변을 동시에 보기 시작했다. 서정 씨는 심상찮은 증상을 보이는 미니를 보고 즉시 입을 벌려봤다. 혀는 새파랗게 변해 있었고 씹지 않은 사료가 식도에 가득 차 있었다. 평소 미니는 아무리 맛있는 것을 줘도 꼭꼭 잘 씹어먹는 성격이었다.

수의대생인 서정 씨는 자신이 다니는 수의대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의대 교수는 "혹시 평소와 다르게 이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라고 물었고 그제서야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국내에는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을 앓고 있는 개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통계조차 없다.
소위 치매라고 불리는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은 노화로 인해 뇌에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가득 쌓여 신경을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노화 질환이다. 낮은 인식은 병의 악화를 부른다. 발병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나타나도 보호자가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오기 며칠 전부터는 밥을 먹은 직후에도 먹을 것을 계속 요구했어요. 집안 곳곳을 헤매고 다니고 같은 곳을 뱅뱅 돌기도 한 것 같네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난해에도 이상한 증상은 있었다. 간헐적으로 허공을 보며 짖는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하루 증상이 나타나면 몇 주간 증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야기를 다 들은 교수는 설문지 한 장을 건넸다. 동물병원에서 반려견의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을 검사하는 점수표였다. 반려견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의 증상들은 흔히 '디샤' (DISHA)라 불린다. 디샤란 '방향감각 상실(Disorientation)' '상호작용 변화(Interaction Changes)' '수면시간 및 패턴의 변화(Sleep and wake cycle changes)' '실내 배변 실수(House soiling)' '활동량 변화(Activity level changes)'의 앞글자를 따와 반려견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의 대표적 증상 5개를 설명하는 단어다.

대표적 증상들을 정리한 표에서 미니는 많은 항목에 해당됐다. 치매가 꽤 진행됐다는 것. 병을 정확히 알고 나니 보이는 것도 많았다. "저를 알아보거나 못 알아보는 것이 거의 반반이에요. 보통 자다가 깨면 저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하거나 안아주면 가만히 있는데, 치매끼(?)가 도질 때면 제가 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안아줘도 내려놓으라고 화를 내더라고요.
또 부모님 댁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하는데 미니가 가끔 저를 못 알아보고 짖더라고요. 탑승 한 시간 전에 진정제를 투약하고 이동한 적도 있어요" 미니는 인지기능장애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보이고 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시도 때도 없이 허공을 보며 짖어대는 탓에 서정 씨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고 쪽잠을 자는 날들이 지속됐다. 서정 씨는 결국 만성피로와 신경쇠약까지 왔다.

◆보호자 체력·정신적으로 많은 노력 필요
"치매가 완치되는 병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늦추거나 개선이 있을까 해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에요" 서정 씨는 미니에게 반려견 뇌 질환에 처방되는 처방식 사료와 반려견 치매 치료제를 급여하고 있다. 또한 노화로 인해 시력과 청력을 잃은 미니를 위해 각종 영양제까지 챙긴다.
대뇌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 노즈워크(강아지가 좋아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숨긴 후 후각을 사용해 찾게 하는 훈련법)를 자주 하고, 걷지 않더라도 이동식 가방에 미니를 넣고 다니며 빠짐 없이 산책을 나간다. 지속적으로 미니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평상시처럼 대하고 예전 일들을 계속 말해주면 기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서정 씨는 스스로를 보듬는 일에도 힘을 쏟는다. 긴 병에 장사 없다지만, 치매견 미니를 위해 장사가 되어 보려고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면 안되니 저도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자꾸 깨는 미니 때문에 못 자는 잠은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든지, 미니와 상생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노력 중이랍니다. 아파도 좋으니 곁에만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힘들어도 상관없어요. 정말로요" 치매에 걸린 반려견을 돌보는 데에는 보호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실수가 많아지는 반려견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물론, 밤이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짖는 통에 일정 부분 수면 시간도 포기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슬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니를 위해 매일 일기를 쓰고 있어요. 증상 일기이자 추억 일기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 글을 미니에게 그대로 읽어줘요. 저를 기억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그 모든 걸 기억하고 미니에게 알려주면 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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