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작은 불가능성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더 큰 불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약혼녀가 될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눈앞엔 불가능한 것이 너무나도 많고 언젠가 삶의 종착지에 다다를지라도 그것들이 변함없이 내 어깨를 짓누를 것 같아서 무기력하던 그때, 이 책을 만났다. 특하 이 구절은 당시 내게 큰 용기가 되어주었다.
1912년은 카프카의 삶에서 펠리체 바우어를 만난 것 외에도 특별한 한 해였다. 대표작 '변신'을 집필한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 29살의 나이에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노동자재해보험공사의 법률고문으로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직장생활을 하던 카프카는 글을 쓰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에게 쓴다는 것은 작은 불가능을 넘어서고 더 큰 불가능을 마주하는 작업이었다.
평범한 외판원이던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된 이야기 '변신' 속에는 카프카의 철학처럼 작은 불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가 녹아있다. 아침에 일어나 떠나려는 지배인을 돌려세우기 위해 문을 열기까지 그레고르는 일어나는데 실패하고, 옷 입는데 실패하고, 말하는데 실패한다. 또 문을 가까스로 열었으나 지배인과 대화하겠다는 자신의 목적은 이루지 못한다.
심지어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소통마저 실패한다. 방에 놓인 가구를 정리할 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필사적으로 액자만은 내놓지 않겠다고 주장한 행동은 결국 자신을 본 어머니를 실신하게 만들어 의도와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 끝없는 시도는 그레고르가 결국 스스로 굶어죽는 걸 선택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카프카는 그레고르의 이 비극이 끝나는 순간 "그대여, 울어요. 지금이 울 때입니다. 내 단편 이야기의 주인공이 조금 전 죽었습니다. 주인공이 평화롭게 모든 것과 화해한 채 죽었다는 걸 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겁니다"고 자신의 연인 펠리체 바우어에게 알렸다.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한 소통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 굶어죽는 것을 선택한 순간에만 이루어진 것이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는 카프카 예술의 비극성은 집요한 연속적인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품에서나 현실에서나 실패는 언제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실패 후에도 여전히 삶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한다 할지라도 인간은 살아야 한다. 상처받았다면 상처를 간직한 채로, 모든 걸 잃었다면 잃어버린 채로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 삶에는 위로가 필요하고 용기가 요구된다. 위로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고 용기는 스스로가 갖는 것이다. 위로를 얻기보다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이 책을 읽으면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해가 저문다.
하윤탁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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