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0년(세종 12) 10월 23일 세종대왕이 부제학 정인지(鄭麟趾)로부터 '계몽산'(啓蒙算)을 강의 받았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있다. 세종대왕은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었을까. 문제를 살펴보자.
'하-5-12 지금 정사각형 밭과 원형 밭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넓이의 합은 9.49무다. 다만, 정사각형 밭의 변과 원형 밭의 지름의 길이가 서로 같다고 한다. 정사각형의 변과 원의 지름은 각 얼마인가.'
'답: 정사각형 변과 원의 지름 각각 36보'
필자는 이 문제를 보고 번역서(허민 옮김·2009년)에 나와 있는 풀이 과정을 살펴봐도 이해가 잘되지 않는데, 600년 전 세종대왕이 이런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었다니 그 열의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왕 자신이 솔선하여 수학을 공부하고, 정부 고위층의 학자 관료들도 수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조성된 때는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서 이 시기 뿐이었다.
동아시아의 전통 수학을 '산학'(算學)이라 부른다. 여기서 세종대왕이 배운 '계몽산'이란 것의 정식 서명은 '신편산학계몽'(新編算學啓蒙)이다. 이 책은 중국 원나라 주세걸(朱世傑)이 1299년에 편찬한 책으로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책에는 수시력(授時曆·중국 원나라 때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모두 고려하여 만든 태음태양력)에서 다루는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계산법인 천원술(天元術)이 소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역산(曆算) 연구와 관련해 당시 이 책이 중요시되었다.
책의 구성은 본문 내용에 대한 준비적 지식을 '총괄'(總括)의 항목 아래 ▷곱셈 구구 ▷나눗셈 구구 ▷16으로 나눈 몫 ▷산대에 의한 수 표기법 ▷큰 수와 작은 수의 명수법 ▷무게·들이·길이·넓이의 단위 및 단위 사이의 관계 ▷원주율 ▷특수한 분수의 명칭 ▷양수와 음수의 합·차·곱·몫의 부호 ▷다항방정식의 해법 등 18개항으로 수록돼 있다.
또 '총괄' 이후 본문은 문제집 형식으로 전체 20문(門)에 259개의 문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전(全) 3권으로 나눠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항목의 설명과 항목 설정은 전 책에 걸쳐 개방법(開方法·다항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계산법)과 천원술을 통해 쉬운 것에서부터 점차 높은 수준으로 전개하여 학습 효과를 높이도록 구성하고 있다.
조선시대 이 책의 판본은 ▷문종 재위기간(1450-1452)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경오자본(庚午字本) ▷성종 재위기간(1469-1494)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을해자본(乙亥字本) ▷중종 재위기간(1506-1544)의 을해자본 ▷1660년의 목판본(木板本) ▷1715년 또는 1775년의 교정(校正)을 거친 1810년의 목판본의 순서로 간행되었으며 다수의 필사본(筆寫本)도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17세기 이후에 많은 관련 저술이 편찬되었고 일본 수학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사라져 오랫동안 존재가 잊혀지기도 했었는데, 청나라의 학자 나사림(羅士琳)이 조선에서 1660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신편산학계몽'을 구해서 1839년에 간행했다.
이후 중국에서 여러 저술의 출현에 바탕이 되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사라졌던 천원술을 조선에서 계승해 다시 중국에 전파함으로써 중국 수학사에서 주세걸의 지위와 영향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끝)
최우경 (영남대 중앙도서관 고문헌실)
댓글 많은 뉴스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