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공연계의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김지영 극단 만신 대표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는 표현이 몇 년 사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장애를 가진 시민들의 직장, 가정, 지역사회 생활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74년 유엔 장애자 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사용되어온 용어라고 하니, 거의 50년 된 용어이다. 저상버스의 도입이나 지하도에 휠체어 승강기를 설치하는 것 역시 이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공연계 곳곳에서도 '배리어 프리'라는 키워드를 내건 공연들이 눈에 띈다. 이런 공연들은 보통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자막, 수어통역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점자 프로그램북 등을 도입하고 있다. 물론 이 방법들이 감각적 요소로 이루어지는 공연의 매순간들, 그 감각들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외화에도 자막이 있지만 그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말맛이나 다양한 상징, 배우의 연기를 완전히 느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막이 없다면 아예 볼 생각도 하지 못할 그 영화를, 자막이 있기에 최소한 보러갈 수는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는 부족할지언정 긍정적인 변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배리어 프리'는 장애인이 관객으로서뿐 아니라, 공연에 예술가로서 참여하는 영역에서도 고민해볼 문제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배리어 프리'에 대해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작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장애를 가진 분들과 모르는 사이 잠깐 스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올해 처음으로 '만나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극단에 연출로 초청을 받아서 함께 작품을 창작하고 연습해서 무대에 올리는 몇 달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고민하게 되었다.

그 중 첫 만남에서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다. 무대에 서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지녔음에도 장애를 가졌기에 그 꿈이 좌절된 한사람의 터져 나오던 분노, 좌절감…. 그리고 몇 달간을 그들과 함께하며 다시금 발견한 것은 장애인치고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배우로서 뛰어난,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몇몇 참가자였다. 그리고 배우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나는 섣불리 어떤 확답을 줄 수 없었다. 아직은 그저 많은 것을 고민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의 고민과 관심은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배리어 프리에 대한 많은 분의 관심이 유행타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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