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보고 싶은 어머니, 어머니 팔베개 베고 누웠던 그 시절 그 시간은 온 천하가 내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구름도 흘러간 지금, 저도 나이가 들고 보니 어머니께 못한 일들만 떠올라 후회와 죄송함 때문에 눈물 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는 명절이 되면 항상 우리 형제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사 주시려고 영천 읍내 장에 가셨습니다. 오늘은 내가 원하는 운동화 사 오실까 예쁜 옷을 사 오실까 즐거움에 들떠 있습니다. 그때는 고무신 신고 치마저고리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점심때쯤이면 마을 앞 개울 건너 청송행 버스가 잠시 정차했다 가는 곳을 바라보면서 찻길 옆 논두렁, 밭두렁 길을 오가며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고 때론 집에 들어가 부엌에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땝니다. 어머니가 오시면 찬물에 씻지 말라고 한 건데 큰언니가 불 땐다고 야단 칩니다.
우리 동네는 서쪽 우물 동쪽 우물이 있는데 모두 연일 정씨만 살다 보니 누가 쌀을 많이 갖고 와서 씻고 있으면 오늘 저 집에 제삿날이구나 하시고 그날은 밤늦게까지 안 주무시고 머리 다듬고 옷을 단정히 입고 있었습니다. 제사음식을 가지고 오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난 수십 년 후 전 작은 식당을 하면서 어머니와 살고 있었습니다. 어딜 다녀오시다가 제가 좋아하는 옥수수빵을 사서 제게 주고 가시려고 가게에 들르셨을 때 집에 태워 드리겠다면 버스 타고 가신다고 나오지 말라고 하시면, 전 그렇게 하시라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철이 없었던지...
버스 정류장에서 보따리 들고 버스 기다리던 그 모습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혈압이 뭔지 병에 대해선 전혀 무지했던 전 약전 골목에 한의원에서 침 맞게 해 드리고 영천에 중풍 잘 고친다는 한의원에서 약을 사서 끓여 들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닭고기, 돼지고기만 드리면 잘하는 일인 줄 알고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가게 마치고 집에 가면 "얘야 나 만 원씩 줄 수 없겠냐"하셔서 엄마가 갖고 계시거나 딸인 제 통장에 있으나 같다는 생각에 엄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누워계시는 이불 밑에 고이 모으시다가 가끔 고향 친척들이 대구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문병 오시면 그분들 차비하라고 드리곤 하셨습니다. 낮에는 제가 가게를 비우지 못해 어머니는 늘 혼자 계셨습니다. 어쩌다 손자 보느라 바쁜 큰언니가 와서 목욕하자고 하면 싫다고 하시고 언니가 가고 나면 제게 목욕해 달라고 하시면 전 짜증을 냈습니다.
고향의 이 집 저 집 얘기를 언니에게서 들으시는 것이 즐거우셨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해 못했습니다. 한쪽 손은 사용이 돼서 가게로 전화하시면 전 바삐 집에 가서 어머니를 끌다시피 해서 변기에 앉힙니다. 어머니는 볼일이 빨리 안돼서 시간이 걸리면 전 답답해서 어머니를 재촉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가게에 빨리 가야 한다는 제 생각만 한 것입니다.

화장실이 마당에 있는 집에서 좌석 변기가 있는 가게 가까운 집으로 이사했는데 어머닌 제게 늘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억지로 앉아서 몸을 밀면서 나오셔서 제 방문 앞에서 제가 나오길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화장실에 가시고 싶은데 늦게 들어와 잠을 자는 저를 깨우기가 미안했다고 했습니다. 밤에 한 번씩 어머니 방을 들여다봐야 되는데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날 화장실에서 또 혈관이 터져서 동산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추석날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는 그냥 슬펐지만, 세월이 갈수록 잘못함과 그리움으로 울 때가 많습니다. 엄니 산소 주변에 있는 할미꽃을 캐서 산소 앞에 심어 놓고 해마다 가서 살아있나 보곤 했는데 이젠 멧돼지 온다고 산 입구부터 울타리를 쳐서 혼자는 무서워서 못갑니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죄송함 후회 속에서 괴로워하다 공황장애가 와서 가게 식구에게 우리 대문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세월 따라 유행 따라 모두가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어머니의 사랑. 보고 싶어요.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전화: 053-251-1580
▷이메일: tong@imaeil.com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