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립운동가 허위 선생의 손녀 허로자 여사 별세

빈소와 장례비용 마련못하자 구미 LS전선(주)에서 전액 부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궁핍한 생활…경제적 지원대책 절실해

왕산 허위 선생 친손녀 허로자 여사 생전 모습. 구미시 제공
왕산 허위 선생 친손녀 허로자 여사 생전 모습. 구미시 제공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의 손녀 허로자 여사의 장례가 지역 국회의원과 지역 기업의 도움으로 치러진 사실이 알려져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3대에 걸쳐 14명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의 둘째 손녀인 허로자 여사가 이달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허위 선생은 경북 구미 출신으로 조선 말기에 항일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고종의 어명으로 1만여 명의 의병과 해산군인들을 모아 서울 탈환 작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기습 체포됐다. 1908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54세의 일기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허위 선생의 자손들은 일본의 추적을 피해 만주, 연해주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허 여사도 두 지역은 물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떠돌며 살았다.

왕산 허위 선생 친손녀 허로자 여사 생전 모습. 구미시 제공
왕산 허위 선생 친손녀 허로자 여사 생전 모습. 구미시 제공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삶과 고려인에 대한 편견은 경제적인 궁핍으로 이어졌고,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외로운 삶을 이어왔다.

허 여사는 2006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던 당시 한명숙 전 총리와의 만남을 계기로 80여년 만에 조국 땅을 밟게 됐다. 항일 투사로 활약한 아버지 허학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귀화를 마음먹은 것이다.

허 여사는 2007년 법무부에 귀화를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독립 후손 증빙 서류에 아버지의 이름이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허학'이 아닌 '허형'으로 기재된 탓이다.

9촌 조카의 도움으로 2009년에서야 귀화 신청서를 다시 접수할 수 있었고 이듬해 귀화 허가증을 받고 2011년 1월 12일에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했다.

허 여사는 별세 후에도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빈소와 장례비용 등을 마련하지 못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을 전해들은 구자근 국회의원은 지역기업들에게 알려 도움을 요청했고, 구미 LS전선㈜이 빈소와 장례비용 등을 전액 부담하기로 해, 어렵사리 빈소가 마련됐다.

허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황기철 보훈처장 등이 화환(조기)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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