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가계를 배경으로 원통형 봉우리 사이를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 화려한 꽃 틈바구니에서 힘차게 용솟음치는 고래, 파도치는 해안가 바위를 향해 널뛰기하듯 땅으로 도약하려는 고래 등.
이른 바 '고래의 꿈'을 주제로 지구상 최대 동물인 고래를 캔버스에 담고 있는 서양화가 이종선(67) 작가. 그의 고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면 속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거대한 고래의 몸짓으로 말미암아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운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국내에서 고래를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가는 더러 있어도 역동적인 고래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는 이종선이 아마도 유일하다. 그런 그가 놀랍게도 대구 동구 이시아폴리스에 직원 20명을 데리고 무역 전문 나염업체 ㈜젠텍스를 경영하고 있는 여성CEO이다.
◆맡기느니 내가 직접 해볼까
"나염 전문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원단에 수놓을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인데, 디자이너와 함께 무늬를 궁리하다보면 제 마음에 쏙 들지 않을 때가 있었죠. 그럴 때마다 아예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차에 2015년 우연히 지인의 그림 전시회에 들러 '그림도 배우면 된다'는 말에 한 화실을 찾아 그림그리기에 입문했다.
"처음부터 그림이 정말 재미있고 마치 원단에 나비랑 꽃을 새겨 넣듯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는데, 주변에서 깜짝 놀랄 정도로 잘 그린다는 말을 듣게 됐죠."
그러면서도 그는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정에 휩싸여 고민하던 차에 어느 날 꿈속에서 바닷물에 있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고래 꿈을 꾼 후 '고래가 곧 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어 당시 화실의 강사도 "이 대표는 마음이 크고 생각도 넓으니 고래그림을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힘을 얻어 고래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미술대전 우수상 특선 2회, 대구미술대전 대상, 서울국제미술교류전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재능을 알렸고, 2017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과 2019년 두 번째 개인전 때는 전시 작품이 모두 팔리고 별도의 주문을 받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고비마다 오뚜기처럼 재기
30대 초반 사업을 시작한 이 작가의 ㈜젠텍스는 현재 코튼, 인견, 천연 소재에 디자인을 프린트해 미국과 유럽 등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35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숱한 고비도 있었지만, 특히 큰 고비를 5차례나 맞이하고도 현재의 성장을 이룩한 건 모두가 이 작가의 낙천적 성격이 큰 밑천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제8회 대구경북중소벤처기업 업체 대상을 수상했다.
"저는 고비가 생길 때마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제 스스로에게 불어넣어줍니다. 남들처럼 똑같이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머릿속에는 늘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그는 매년 2천만원 정도의 금액을 장학금과 장애인 복지재단에 기부한다. 지역 화가들의 전시회에서는 작품 구매도 한다. 그가 소장하는 그림들은 대부분 작가후원을 위해 구매한 것들이다. 현재 그는 뉴대구운동 공동대표이자 국립이건희미술관 대구유치 시민추진단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의 공동선 추구를 위해서도 앞장서고 있다.
◆'고래의 꿈'은 나의 자화상
화가로서 이 작가가 추구하는 화풍은 기존 작가들이 중시해온 화법을 과감히 탈피해 자유분방한 사고력과 표현력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다. 사물의 비례나 양감, 원근법을 거의 무시하고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난 듯 자유로이 공간을 구성하는 것 또한 이종선만의 특이한 화법이다. 바다 속 고래가 아니라 바다를 벗어난 공감 체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고래의 꿈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성은 높게 평가될 만하다.
"꿈은 영혼을 통합하는 힘을 지닌 원초적 정신력이죠. 고래의 꿈은 나의 작품세계를 이끌어주는 단초가 됩니다. 따라서 고래의 꿈은 제가 꿈꾸는 세상 혹은 이루어지길 바라는 세상에 대한 바람이자 저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이를 위해 이 작가는 고래의 이미지 창출을 위해 틈날 때마다 고래 영상과 사진 등 자료를 모으고 고래의 생태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 임인년엔 새로운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소망을 화폭에 담아 희망을 전하고 싶죠."
이 작가는 본격적인 그림 작업을 위해 2021년 6월 회사 사무실 옆에 봉무갤러리를 개관했다. 개인 화실 겸 누구든지 와서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꿈을 향해 그는 앞으로 3년쯤 더 사업체를 운영한 후 그림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요즘도 사무실에서 짬이 나면 곧장 화실로 가서 그림을 그린다. 거의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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